유고슬라비아 정세에 따른 티토의 정책
- 최초 등록일
- 2010.05.17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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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티토의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화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194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1) 티토의 유고 공산화
(2) 코민포름 분쟁
Ⅲ. 티토이즘
(1) 유고슬라비즘
(2) 비동맹주의
(3) 자주관리제도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미국과 소련, 두 진영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는 강대국의 이익 관계 속에 좌지우지된다. 특히, 두 진영은 그들만의 확실한 장벽을 구축하기 위해 확보지역마다 자신들의 체제를 주입시켰으며 당시 많은 나라가 분할되어 점령되었다. 이때 소련의 스탈린은 동유럽의 완전한 주도권을 잡기를 원했으나, 종속이 아닌 평등한 사회주의 우호 국가로서의 관계를 원했던 티토는 스탈린과의 계속된 마찰을 불러일으킨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한 번 두 진영 간의 갈등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티토와 소련의 갈등을 야기 시킨다. 한국전쟁에 대해 유고슬라비아(이하 유고)는 동유럽 국가들 중 유일하게 ‘한국전쟁은 한국군의 북침이 아닌 소련의 군사적 도움과 사주로 인해 발생한 남침’임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이유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고는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였으나 한국전쟁을 극동의 한 지역 문제로 보지 않고 발칸유럽이라는 지역 내 자신의 경우로 인식하여 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고는 코민포름 축출로 인해 경제․외교․군사적 위협을 겪고 있었으나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후 유고에게 ‘양날의 칼’과 같은 요소로서 여러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위의 경우처럼 유고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코민포름의 축출이라는 국가적 희생을 겪었고 그에 따라 지도자의 정책에도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갈등이 첨예하던 시대에 국가의 핵심인물인 티토가 있었음을 인식할 때, 그가 국가의 상황적 필요에 의해 갖추어 나간 체제 확립과정은 그 국가의 형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인 소련이 약소국으로 분류되던 유고에 끼친 영향을 파악한다. 둘째, 냉전초기부터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티토의 사상적 특징을 알아본다.
참고 자료
권혁재, 김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