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교회사 아타나시우스(발표용)
- 최초 등록일
- 2013.01.03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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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학교시험
목차
1. 아타나시우스의 생애
2. 신약성서 27권의 체제 확립
3. 아타나시우스의 신앙적 의의
본문내용
아타나시우스는 295년에 이집트에서 출생했고, 그리스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고향은 알렉산드리아였고, 그의 선조들 역시 신학에 관련된 집안이었으며, 그는 가정과 학교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희랍 교부들 가운데 처음으로 기독교적 철학 학풍에 숙달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희랍적인 교양을 불신했습니다. 또한 그는 기독교인이었고, 알렉산드리아의 성직 제도의 관리직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학파”가 아니라 “예배와 성직자의 교회 관리실”이 그의 정신적 고향이었습니다.
교회 정치와 관료적 통치에 관심이 있는 세계 전체에 대하여 아타나시우스는 일찍부터 숙달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강사였다가 집사가 되었고, 특별한 전문가로서 주교의 신학 고문으로 니케아 회의에까지 참석하였습니다.
328년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알렉산더는 아타나시우스가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고, 많은 저항 속에 아타나시우스가 결국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타나시우스는 46년 동안 다섯 번이나 주교직에서 쫓겨나면서 도피와 은거, 유배로만 17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엄격한 자기 절제, 신념에 찬 용기,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의 적대자들은 정치적 술수와 모함으로 그를 공격하였으나, 아타나시우스는 언제나 신학적인 논쟁으로 응수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알았고, 자신의 주장을 믿었습니다. 그는 바른 신앙의 고백과 보수를 위해 필요하다면, 친구까지 희생시켰을 정도로 진리에 대한 엄격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일반적으로 황제의 권위에 순종했지만,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반종교적 행동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항의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유일한 황제였기 때문에 황제의 권위보다도 하나님의 권위가 우선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아타나시우스는 거의 신화적인 인물이었고, 이교도들까지 그에게 “더 높은 초자연적인 지식이 있다”고 믿었으며, 후세의 교회는 그를 “교회의 기둥”이라 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