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 조선대 한국근현대사의 이해 중간고사 족보
- 최초 등록일
- 2023.10.07
- 최종 저작일
- 2023.06
- 6페이지/ 어도비 PDF
- 가격 4,000원
소개글
"2023-1 조선대 한국근현대사의 이해 중간고사 족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고종은 1873년 11월 친정을 선포하고, 대원군은 하야하게 된다. 이후 고종이 실시한 자강정책의 구체적 모습과 관련이 가장 적은 것은?
1) 대외 방비에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던 고종은 무기제작기술 학습 문제를 청에 요청하였다.
2) 통리기무아문의 조직 개편과정에서 조사사찰단의 조사는 일본에서의 시찰 경험을 기준으로 조직에 배치되었다.
3) 고종은 신식군대 양성을 위해 '별무반'을 설치하였다.
4) 고종은 무기제작기술을 학습할 영선사행을 추진하였다.
5) 고종이 자강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에 파견한 것이 '조사사찰단'이다.
2. 다음 [보기] 중 아관이어[아관파천]과 관련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모두 몇 개인가?
[보기]
(1) 1896년 2월 11일 '국왕은 왕태자를 데리고 대정동 이국 공사관으로 이필주어하고 왕태후와 왕태자비는 경운궁으로 이어하였다.' 흔히 '아관파천'으로 불려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2) '파천'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한다'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국와 고종이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외국 공사관에 숨어들었다고 하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가치판단이 들어있다.
(3) 갑오개혁으로 고종과 명성황후가 추진하던 인아거일책이 좌절되고, 실직적으로 경복궁에 연금되어 있던 고종은 이러한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구 열강의 협조를 구하고자 하였다.
(4) 흔히 아관파천이라 불리우는 아관이어는 일본의 예속에서 벗어나고, 제한된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속에 추진되었다.
(5)고종이 제한된 왕권을 회복하고 강화하기 위해 추진했던 정치적 사건이 바로 아관이어였던 것이다.
1) 1개
2) 3개
3) 2개
4) 5개
5) 4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