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평면및배치 변화과정
- 최초 등록일
- 2008.12.19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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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험기간에 작성한 금당 즉 법당 즉 절의 평면및 배치의 변천과정을 요약한 것입니다.
목차
금당의 평면변화
금당의 배치변화
본문내용
금당의 평면변화
고려시대 후기까지는 불교는 국교로 했다. 지금은 불교행사를 사찰에 가서 하지만 고려시대 후기 까지는 그냥 넓은 공간,터에서 행사를 취했다. 사찰은 상징적인 의미 뿐, 부처님을 안치하는 기능만 있으면 됐고 지금처럼 절을 찾아가고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때의 불전을 감실형 불전이라 하였고 사람의 출입이 필요 없으며 불상 안치 기능을 수용하여 앞뒤 모두 널판문을 달았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이 유입되면서 유교의 취지가 국가에 충성하고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지도자 입장인 상위계층에서는 이런 유교의 내용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하층계층에서는 살기가 박박해져 불교에 더 매달리게 되어 불교신도 계층의 변화가 생기고 열리는 곳도 더 이상 야단법석이 아니 사찰에서 진행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찰에 사람이 오래 머무르다 보니 바닥에 마루를 깔고 문은 널판이 아닌 세 살로 바뀌게 된다.
서민들이 가지고 있던 샤머니즘을 받아드려서 사찰이 많아지고 불교 자체의 이념이 변화하였다.
금당의 배치변화
석가모니의 행적을 찾으며 절을 하다 종교의 형식을 띄면서 숭배할 대상물이 필요했다. 스님이 사리를 갖고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Stupa라는 사리를 보관할 수 있는 것이 등장했다. Stupa가 타파로 되고 탑이 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
초창기에는 부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하였다. 인도의 서북부 간다라 지방의 간다라 미술형식의 영향에 의해 부처님을 세밀하게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지역마다 부처님의 다른 형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상을 안치할 수 있는 금당과 탑이 만들어지게 된다. 탑의 위치와 방향의 법칙들이 생겨나지만 세월에 따라 달라지고 초창기 일수록 탑의 비중이 높았지만 갈수록 금당의 비중이 높아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