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대][방송대][역사의현장을찾아서] 교재에서 역사의 현장을 다루는 방식을 참고하여 나의 삶에 특별한 공간을 한두 곳 소개하고 그 의미를 서술할 것.
- 최초 등록일
- 2022.06.08
- 최종 저작일
-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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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정보
학과 |
일본학과, 관광학과, 문화교양학과 |
학년 |
1학년 |
과목명 |
역사의현장을찾아서 |
자료 |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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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
교재에서 역사의 현장을 다루는 방식을 참고하여 나의 삶에 특별한 공간을 한두 곳 소개하고 그 의미를 서술할 것.
교재에서 역사의 현장을 다루는 방식을 참고하여 나의 삶에 특별한 공간을 한두 곳 소개하고 그 의미를 서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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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방통대][방송대][역사의현장을찾아서] 교재에서 역사의 현장을 다루는 방식을 참고하여 나의 삶에 특별한 공간을 한두 곳 소개하고 그 의미를 서술할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강화도
2. 석모도 보문사
3. 고려궁지와 용흥궁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강화도
우리 역사에서 역사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는 고장 중의 하나가 강화도이다. 강화도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게 되는 첫 장면은 단군조선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군조선시기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려시기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강화도 천도가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왕실의 몽진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조선왕조 말기에는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군사적으로 요새화 되었었고, 서구 열강과의 접촉 및 교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강화도는 면적이 꽤 큰 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4번째로 면적이 큰 섬이다.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의 특성과 작은 언덕과 산이 많은 우리 지형의 특성이 맞물려, 강화도 주변은 수 많은 크고 작은 섬들과 넓은 갯벌이 존재한다. 섬과 섬 사이의 혹은 섬 주변의 얕은 갯벌을 메워서 농지 등으로 이용하는 간척사업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오래 전부터 강화도의 형성 과정에서 이루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려시대이며 조선조 숙종 대에 활발하게 여러 간척 사업을 통해 지금의 강화도의 모습이 만들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국토와 민족 생활사], 최영준
강화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