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이해 ) 우리 역사에서 내가 존경하는 인물을 들고, 나에게 끼친 영향 서술. 나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
- 최초 등록일
- 2022.08.02
- 최종 저작일
-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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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의이해 ) 우리 역사에서 내가 존경하는 인물을 들고, 나에게 끼친 영향 서술. 나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함석헌은 1901년 태어나 일제의 식민시대와 3.1 운동, 일본에서의 유학과 더불어 관동대학살의 시절과 한국으로 복귀 후 6.25, 군사 정변 등 많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오며 숨을 거두는 1989년까지 자신의 믿음과 철학을 꿋꿋이 이어 나가며 한 인간으로서 질풍노도 속 한 국가의 한 개인으로서, 그 시대의 어쩌면 시대의 철학가로서 그 시대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1901년 한 고요한 평안도지방 한의사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인의 회고 자체도 내성적이어서 싸움 한 번 해본 적 없었던 – 어린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 별명도 싸움 할 줄 모르는 아이라고 일컬어짐- 조용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는 밀려오는 파도 앞의 작은 등불과 같았고, 정치, 사회, 경제 등 국가망의 모든 체계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평화롭고 싸움조차 몰랐던 어린 함석헌이 9살이 되던 해 1910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그저 순종적이던 함석헌은 일제에 의해 세워진 관립학교이자 일류학교로 명성이 높았던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아버지를 따라 일제 시대에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없을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 내면의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심이랄지 깨끗했던 마음이 점차로 쇠퇴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함석헌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그 작고 가난한 동네 속에서도 지적으로 계몽된 편으로 특히 학교 교사이자 열성적인 개신교 신자 삼촌 함일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삼촌의 둘째 아들인 함석은의 영향으로 1919년 3월 1일 함석헌 삶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훗날 함석헌은 3.1운동 당시를 돌이켜, “독립선언서를 전날 밤중에 숭실학교 지하실에 가서 받아들던 때의 감격! 그날 평양경찰서 앞에 그것을 뿌리던 생각, 그리고 돌아와서는 시가행진에 참가했는데, 내 60이 되어오는 평생에 그날처럼 맘껏 뀌고 맘껏 부르짖고 상쾌한 때는 없었다.
참고 자료
씨알 사상으로 민족정신 깨운 시대의 스승, 김덕형 언론인·‘한국의 명가’(근대편) 저자, 주간 조선, 2011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543
한 권으로 보는 한국사, 정현, 서림당, 2016, 226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