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한국의 비교문학, 창작과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에세이
- 최초 등록일
- 2014.02.04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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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의 울리포를 기반으로 시작한 잠재문학실험실. 그 상호텍스트성과 창작에 힘입어 그에 대한 단상과 직점 창작에 참여한 작품들이 함께 실려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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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글을 쓴다’와 ‘창작’은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을까? 나는 한 학기에 십여 개의 레포트를 작성하는 대학생이다. 그렇다면 나는 매 학기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절대 내 레포트들이 창작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요 받은 글은 창작이 될 수 없다는 나의 생각 때문일까? 반면에, 나는 가끔 소설이나 시를 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서 작품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독자가 없는 작품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 학기에 시는 두 세편 정도, 소설은 한 편 정도 꾸준히 쓴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에 연습 삼아 쓰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한번 문학상에 도전해보려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한번 문학상에 내놓아 보겠다고 생각하니, 그것에 얽매어서 아주 탐탁지 않은 소설이 나왔고, 아예 폐기 처분한 기억이 있다. 즉, ‘글을 쓴다’와 ‘창작’ 그리고 ‘작품’은 엄연히 다른 분야이다. 창작은 작가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쳐 보이는 것이고, 창작물이 작품으로 가기 위해서는 외부의 비평이랄까, 평가랄까, 존재해야 한다.
이번 학기 들어, 수업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창작을 해야 할 기회가 생기면서, 상호텍스트성에 대하여 고민해 볼 여지가 조금 생겼었다. 지인의 부탁은 그러했다. 울리포, 즉, 『잠재문학실험실』처럼 소설이나 시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잠재문학실험실』이라는 책을 나에게 건네왔다. 처음 보는 책이었다. 이전까지 ‘소설 같은 소설’만 읽고, 쓰려 했다. 여기서 다시 ‘소설 같은 소설’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설 같은 소설’은 내용, 스토리만이 존재하는 글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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