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강근호 구술사
- 최초 등록일
- 2016.09.03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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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강근호 애국지사의 후손 분과 인터뷰한 구술사 입니다.
에이플러스 받았고요
엄청난 열의를 발휘하여 거의 반나절이나 함께 있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강근호 지사의 삶 뿐만 아니라 이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에 대해서도 다뤄봤습니다.
목차
1. 서론
(1) 연구주제 선정과 과정
2. 본론
(1) 강근호의 생애
(2) 강근호 사후 가족들의 생활
(3) 독립유공자가 된 강근호
(4) 해운대와 강근호와의 관계
(5)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본문내용
(1) 연구주제 선정과 과정
바로 직전 학기에 한국의 지역사라는 수업을 들은 바 있다.
그 수업은 부산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살펴보는 수업인데, 많고 많은 강의 중 이 수업을 들은 이유는 부산대학교의 사학과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부산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사명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동철 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역사학자들이 달성한 부산의 역사에 대한 성과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렇듯 나는 부산 역사를 연구하는 것에 큰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열망은 한국 현대사를 듣는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여전히 부산정치파동, 전쟁으로 인한 피난처로의 부산과 같이 부산에 관한 역사를 배울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였다.
이러한 나에게 구술사의 연구대상을 부산의 역사적 인물로 정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구술사라는 연구방법의 특징을 감안하여 비교적 가까운 날의 역사인 일제 강점기 때의 부산독립운동가 중 한명을 선정하려했다.
처음에는 박차정 의사를 떠올렸다.
동래에서 의경으로 복무하던 당시 방범을 돌며 박차정 의사의 생가를 자주 방문하여 익숙하기도 하였고 또한 개인적으로는 여성 독립운동가들 중 가장 큰 업적을 이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박차정 의사의 남편은 북한으로 건너간 김원봉 의사이다.
그래서 박차정 의사의 후손이 부산에 살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인물을 찾아봐야만 했다.
그러다가 강근호라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강근호 길’의 존재 때문이다.
‘강근호 길’은 해운대 장산의 대천공원에서 모정원까지, 약 2km구간의 길을 가리키는 도로명이다.
독립 운동가에 대한 기념비와 기념관은 많이 봤어도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딴 ‘길’은 처음이었다. 과연 어떤 커다란 업적을 남겨서 도로명으로 까지 이름을 날렸는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는 강근호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앞서 기술하였고, 또 이후 본론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강근호는 독립 운동가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청산리 대첩 등에 참여한 무장 독립 운동가이고 만주 등에서 활동한 해외 독립 운동가이다.
참고 자료
주영택, 『만주벌의 강근호와 정자벌의 이정희에 얽힌 이야기』, 애국지사 강근호선생 기념사업회, 2014
김인호 외 3명, 『강근호지사를 통해서 본 청산리전투와 한국전쟁 그리고 사랑』, 애국지사 강근호선생 기념사업회, 2014
최용호, 『통계로 본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7
김재승, 『만주벌의 이름없는 전사들』, 혜안, 2002
송권면, 『보훈서비스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행정학과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6
한춘경, 『독립유공자유족의 보훈제도 만족도가 보훈의식지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경기신문, 『[사설]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에 대한 예우 아쉽다』, 경기신문, 2015년 8월 16일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