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고전] 아담스미스와 경제
- 최초 등록일
- 2001.11.30
- 최종 저작일
-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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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담스미스와 국부론 그리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아담스미스 와 그의 生涯
2. 國富論과 自由放任主義
3. 스미스 이후의 經濟學
4. 아담스미스의 政府政策觀
Ⅲ. 結論
- 오늘날의 經濟에 아담스미스가 미치는 影響
Ⅳ. 後記
Ⅴ. 參考文獻
본문내용
本論
1. 아담 스미스와 그의 생애(生涯)
경제학자들의 족보를 따져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담 스미스가 맨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근대적(近代的) 의미에서의 경제학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거의 모든 경제적 개념(經濟的 槪念)의 씨앗이 국부론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스미스 이전... 그러니까 중세부터 콜럼부스의 대륙발견 시기까지는 그야말로 신학자들의 세상이었다. 기독교는 유럽의 사상체계를 지배하였고, 교회장로들은 모든 자연 현상을 종교교리로써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와서 베이컨이나 코페르니쿠스의 과감성 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자연현상(自然現象)에 대한 합리적(合理的) 해석을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과학자들은 통치 교회로부터 독립을 주장하였으며 과학적 법칙(科學的法則)을 자연 현상에 적용(適用)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아담 스미스가 출생하였고, 그는 성장하면서 이러한 계몽운동(啓蒙運動)의 영향을 받는다. 아담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의 커칼디에서 탄생하였다. 아버지는 세무관리였으나 스미스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는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737년 글라스고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그곳에서 약 3년 동안 공리주의(功利主義)의 권위자인 허치슨 교수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스미스의 뛰어난 지력은 재학 중에 이미 인정을 받아서 1740년부터 1746년까지 옥스퍼드의 벌리올 대학을 다녔다. 그 당시 스코틀랜드인 에 대한 민족차별이 심하고 옥스퍼드 대학의 학문풍토도 침체되어있었기 때문에 강의(講義)가 별로 없어서 스미스는 주로 독서에 열중하였는데 모든 분야의 도서를 섭렵(涉獵)하였던 것이 스미스가 좋은 책을 쓸 수 있었던 박학다식(博學多識)의 밑천이 되었다. 1747년에는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에 있다가 1748년에 에든버러 대학의 교수가 되어서 문학강의를 하였으며 1751년에 글라스고 대학의 논리학 교수가 되었다. 1752년에 허치 슨의 뒤를 이어서 도덕철학 교수가 되어서 30세까지 글라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많은 책들을 썼다. 그중 1759년에 저술된 "도덕감정론(道德感情論)"과 1776년 저술된 "국부론"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널리 읽혀지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1763년 타운센드 재무상의 초빙(招聘)으로 그의 의붓아들인 바클럭 공의 개인교수로 유럽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때 제시된 조건이 연봉 300파운드를 평생 동안 지불한다는 것으로 글라스고 대학의 연봉이 170파운드인데 비하여 후한 조건이었다. 그는 3년간 여행을 하는 중 볼테르, 케네, 톨고 등의 학자들과 교류하였는데 이러한 유럽여행은 그에게 깊은 영감(靈感)을 주었고 이는 그의 역작 "국부론"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또한 그는 1778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세관고문이 되어 연봉 600파운드를 받았고, 1787년에는 글라스고 대학의 명예총장으로 추대(推戴)되<<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