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세계 4대 혁명
- 최초 등록일
- 2002.02.01
- 최종 저작일
- 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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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프랑스 혁명
2. 영국 혁명
3. 미국 혁명
4. 러시아 혁명
본문내용
*프랑스 혁명*
1789년 7월 14일부터 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 이 혁명은 사상혁명으로서 시민혁명의 전형(典型)이라고 불린다. 이 경우에 시민혁명은 부르주아혁명(계급으로서의 시민혁명)을 그대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하여 일어선 혁명인 것이다.
【혁명의 서곡】 혁명의 이념은 계몽사상가인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에 의해 약 반세기에 걸쳐 배양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루소의 문명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인민주권론이 혁명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프랑스왕권은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완성한 절대주의 체제에 의해서 여전히 국왕친정과 신권이론(神權理論)을 받들고 국가와 인민 위에 군림을 계속하였다. 신권왕정 밑에서는 모든 국민이 단순히 국왕의 신하에 불과하다. 그 위에 소수의 귀족˙성직자들만이 별도의 특권신분을 구성하고, 국민의 90`%를 차지한 평민층의 근로와 납세에 기생하면서 우아하고 무위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모순은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루이 16세(재위 1774∼92)의 정부는 미국독립혁명을 지원한 군사비 때문에 재정궁핍에 빠졌다. 재정총감 칼론은 1787년 2월에 명사회(名士會)를 소집하고, 특권신분에게도 과세하는 ‘임시지조(臨時地租)’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귀족˙성직자들은 국왕의 사법관료 아성(牙城)인 파리 고등법원과도 결탁하고 고등법원이 가진 법령심사권한을 이용해서 왕정고문부의 재정안(財政案)에 저항하였다. 이 왕권 내부(또는 체제 내부)에서 투쟁하는 사이에 재정총감 칼론과 그 후임자 브리엔이 실각하고, 88년 8월에 네케르가 재차 재정총감으로 기용되었다. 그는 고등법원의 요구를 받아들여, 1614년 이래 열리지 않았던 전국 3부회를 다음해에 소집할 것을 국민에게 확약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