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운동시기
- 최초 등록일
- 2009.07.14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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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항일운동시기 관련 리포트입니다~
목차
민족사학의 방법론과 시대별 역사서술
1) 1910년대, 민족주의 사관의 형성
2)1920년대, 민족주의 사관의 개발
본문내용
민족사학의 방법론과 시대별 역사서술
1) 1910년대, 민족주의 사관의 형성
계몽주의 역사가들은 영웅의 의지와 역할에 따라 역사가 변천하다고 보았지만 이러한 영웅사관은 1910년을 전후하여 변해간다. 1910년 을사조약 이후 민족사학자들은 해외로 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민족동화정책으로 구한말의 민족사학을 계승하는 것조차 어려운 이 시기에 조선을 지배하게 된 일본은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는데 그 중 역사학적 측면에서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식민사학의 정립이었다. 이는 타율성론, 정체성론을 그 골자로 하는 것으로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정신을 강조한 민족주의 사학이 형성하게 된다. 국민 또는 민족의 민기(民氣)·국혼(國魂)으로 표현된 정신력에서 역사변천의 동력을 찾는 유심론사학이 개척되었다. 이 사관은 박은식, 신채호, 김교헌, 이상룡 등의 해외독립 운동가들에 의해 개척되어 식민지하에서 민족적 욕구를 강하게 반영하여 각광 받았지만 한국사를 통사로 서술하지 못했기 때문에 식민사학을 구체적으로 극복할 방도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황의돈은 망명생활을 끝내고 국내에 들어와 1914년부터 서북지방의 민립학교에서 비록 필사본이었다고 하더라도 『대동청사』를 보급함으로써 민족사학을 일으켰고 장도빈은 『국사』를 저술한다. 이 시기 해외에서 저술된 것은 신채호가 만주 동창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했다고 전하는 『조선사』,『조선상고문화사』와 이상룡의 『대동역사』, 『서사록』, 김교헌의 『신단민사』, 『신단실기』 그리고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있다. 이때 해외에서 저술된 여러 저술은 『대동청사』 외에는 모두 통사가 아니었고 고대사에 국한하거나 『한국통사』처럼 근대사에 관한 서술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