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전쟁
- 최초 등록일
- 2009.07.30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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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 자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프랑스 내에 존재하는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목차
(1) 프랑스 문화전쟁의 배경
- 프랑스 노동력 부족
- 알제리인의 이민 숫자 증가
(2) ‘히잡 사건’
- ‘히잡 사건’과 배경
- ‘정교 분리의 원칙’의 역사
(3) 공화국의 입장과 ‘신인종주의’
- 좌․우파의 기본적 태도
- 민족전선의 ‘신인종주의’
(4) 공화국의 다문화주의
- 공화국 내의 갈등과 본인의 생각
본문내용
(1) 프랑스 문화전쟁의 배경
프랑스 문화전쟁이 발발하게 된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북아프리카 지역의 마그레브 인의 이민자의 숫자가 증가하게 되면서, 그들이 프랑스에 지속적으로 거주하게 되면서 발발하게 되었다. 전쟁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그레브 지역의 이민자의 숫자는 프랑스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알제리 인들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경제 성장과 재건을 위해 노동 집약적인 기초 산업을 육성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프랑스의 주요 노동력이었던 이탈리아인들은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을 계기로 이탈리아 당국은 자국인들을 외국으로의 이주를 ‘자제’함으로써 프랑스 내에서 이들의 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또한 1955년부터 프랑스 경제는 에너지 자원의 활용, 대규모 건설 공사, 주택 건설, 제철등의 산업이 성장 기반이 되면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나, 이 노동력을 채워줄 ‘프랑스인’이 부족한 실정이였다. 당시 ‘프랑스인’은 1954년에서 1962년까지 ‘알제리 전쟁’으로 약 50만명의 젊은이가 징집당하고 군복무 기간이 연장되었으며, 젊은 ‘프랑스인’들의 학업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프랑스’인의 자체적 노동 역량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적 노동력’의 공급처로써 북아프리카의 이민 노동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민자들에 대한 일반 프랑스인들의 태도는 후에 ‘민족전선’이 알제리인들을 공격하는 도구로써 사용한 ‘실업 문제’가 전후 당시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프랑스 정착을 반대하는 비율이 63퍼센트에 달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히 경제적, 정치적 문제라기보다는 일반 프랑스인들의 타자에 대한 정서적 반감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나 이들은 벨기에나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계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으나, 북아프리카의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당시 프랑스의 경제 발전 노동력의 한축이 되었던 이들에 대한 환호는 단순한 ‘경제적 노동력’으로서의 환호였으며, ‘사회적 공동체’로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알제리 전쟁의 영향이 프랑스인들에게 미친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