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 폭발사고 대체 어느정도 이기에..
- 최초 등록일
- 2009.10.22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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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하여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리역 폭발사고 대체 어느정도 였을까?
“이리역 폭발사고”는 1977년 11월 11일 밤 9시15분에 일어났다.
지금은 익산시로 바뀐 이리시는 당시 인구 13만의 조용한 작은 도시였다.
특히 폭발사고가 발생한 그 순간은 많은 시민들이 집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다투는
한국과 이란 축구대표팀간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천지가 진동하는 폭발음 소리와 함께 도시는 암흑과 공포,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인천에 있던 한국화약에서 화약 30톤(다이너마이트용)을 싣고 광주로 가던 이리역 구내 입환(入換) 4번선 철로에 대기하고 있던 열차가 폭발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다이너마이트용 화약 800상자, 뇌관 36상자, 초안폭약 200상자,
흑색화약 3상자 등 도합 30.28톤
중략..
이번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익산시에 폭발사건이 있었다는 말은 듣기만 했지 어느정도
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번 레포트를 쓰면서 우리지역에 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점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알게되어서 좋은 기회였다.
익산역 사고의 크기는 엄청 큰데 그에 비해 인터넷에서 많은 자료를 찾을 수도 없었다.
익산역 폭발사고 30주년이라는데 그에비해 익산역 자체에도 그 어떠한 자료도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사고를 덮는다고 해서 이미 지나간 사건을 되돌리수는 없다면 그 사고로 인한 얻은 교훈을
보고 또 봐서 되새겨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을 수 있도록 다시 각인 될수 있도록 사건의 대한 사진 자료등을 걸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들면서 이번 레포트를 마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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