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 [임꺽정]
- 최초 등록일
- 2009.10.31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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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작가소개, 시대적 배경, 작품해설, 등장인물, 교과서 학습활동 해설
목차
1. 출생 이후 1918년의 수학(修學)과 방랑의 시기
2. 1919년 3.1 운동 이후 신간회 운동의 1929년까지의 사회적 활동기
3. 1930년대에서 식민지 말까지 「임꺽정」집필의 은둔기
4. 해방 정국과 북에서의 정치 활동기
5. 맺음말
<참고문헌>
『임꺽정』 (1928~1939)
<교과서에 수록된 줄거리>
<핵심정리>
<인물 정리>
<이해와 감상-기본편>
<이해와 감상- 심화편>
<홍명희, 임꺽정>
본문내용
1. 출생 이후 1918년의 수학(修學)과 방랑의 시기
1888년 7월(고종 ) 충북 괴산군 괴산면 인산리(행정 구역상 괴산읍 동부리 450-1번지)에서 명문 풍산 홍씨가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풍산 홍씨는 당파상 노론에 속하는 명문 사대가로서 홍주원(선조의 부마), 홍상한(영조, 이조판서), 홍봉한(사도세자 장인), 홍국영(정조) "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증조부 홍우길은 대사헌, 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지낸 분이며, 조부 홍승목도 정2품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고, 부친인 홍범식은 1910년 금산 군수로서 경술국치를 당해 비분 끝에 제일 먼저 자결한 인물로 유명한 분이다. 홍명희는, 성품과 자질 면에서 몸은 비록 약했으나 불의를 보면 용납할 줄 모르고 의를 사모하는 지절을 갖춘 부친을 가장 많이 닮았을 뿐 아니라 부친이 순국한 충격적인 사태로부터 평생에 걸친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느껴진다.
생모는 은진 송씨로 산후 탈이 병이 되어 삼 년을 끌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한양 조씨를 새어머니로 맞아 동생인 성희가 태어났다. 나중에 이 이복형제인 성희와 장남 기문과 의기투합하여 3.1 운동, 시대일보사 경영, 신간회 활동 등 많은 사회 활동을 함께 하였다. 그는 한국 근대 작가들 중 유례가 드물 만큼 최상층의 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사대부가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당시 양반가의 자제들처럼 漢學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비상하고 탁월한 기억력과 뛰어난 문재를 드러내었다. 또한 당시의 관습대로 명문대가 출신의 전형적인 조혼을 하게 된다. 열세 살 되던 1900년, 3살 위인 여흥 민씨 삼방파에 속하는 참판 민영만의 딸과 혼인하였다.
또한 16세 때 장남 기문(호:대산. 1903~1992)이 태어났다. 홍명희와 홍기문은 `막말로 형제와 같은 부자`로 후에 부자간에 담배도 마주 피우고 술도 같이 먹을 정도였다. 장남 기문은 신간회 활동, 해방 후 민주독립당 결성, 남북연석회의 참석 등 홍명희와 시종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였다.
1901년 상경하여 1902년 중교의숙에 입학함으로 처음으로 신학문에 접하게 된다. 1905년 졸업 후 귀향 생활 중 일본인 부부를 만나 일본 유학길(1905. 여름)에 오른다. 동경상업학교 예과 2학년에 편입한 뒤 이듬해 대성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909년까지 생활한다. 성적은 매우 우수했었으나 그는 학업 성적보다 놀라운 열정으로 문학 서적 탐독에 더 빠져 들었다. 이때의 광적인 독서열은 평생 계속된 것이다. 또한 이 유학 시절에 호암 문일평,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교우 관계를 맺게 된다.
참고 자료
․강영주 「벽초 홍명희 <임꺽정 재조명>」 (사계절. 1988)
․강영주 「벽초 홍명희」 {역사비평} 18, 24, 25, 30호 (역사비평사)
․한승옥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연구」 (숭실어문. 198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