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관해
- 최초 등록일
- 2009.11.10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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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라이트의 대표적 약력
2. 라이트의 건축적 사고 확립 배경
3. 유기적 건축 [organic architecture]
본문내용
1. 라이트의 대표적 약력
1867 : 미국 위스콘신주 리치랜드센터에서 목사이자 음악가인 아버지 윌리엄 라이트와,
웨일즈출신의안나 로이드 라이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5 : 위스콘신대학에 입학, 건축과가 없어 토목과에 다님. 토목과 교수인 알렌 D. 코노버교수 밑에서제도사로 일하며 “구조는 수단이고 건축은 결과이다. 건축가가 구조 계획할 때에는 재료를 성질에 따라 써야 한다.” 라는 것을 깨우쳤다.
1887 : 대학을 중퇴하고 시카고의 레이만 실비스 사무소에서 일함. 일년도 못되어(8개월 만에) 퇴사하고 루이스 헨리 설리반 (유럽의 낡은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런 형태를 지향하는 건축 추구) 사무소에 들어가게 되고, 그를 평생 스승으로 생각함.
1893 : 자신의 사무소를 시카고에 개설. 시카고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림. 시카고 박람회는 스승 설리반 이외의 모든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부정하던 라이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특히 일본과 동양의 건축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1893~1910 : 라이트의 제 1황금시대 라고 할 수 있으며 ( 200개 가까운 건물을 설계 ) 여러 방면으로 뻗은 플랜, 공간적인 유동성, 대지의 수평선에 동화한 듯한 외형 등을 훌륭하게 통일하여 독창적인건축세계를 구축하였다. 소위 자연과 대지에 융합한 전원주택(Pririe House)을 설계한 시기이며 주요 작품은 윈슬로우(Winslow)주택(1893), 라킨 빌딩(1904), 유니티 교회(1906), 로비(Robie)주택(1909)등이 있다.
1910년 라이트의 작품집이 베른린에서 출판, 유럽 건축계에 큰 반향을 일으킴.
1911∼1935 : 소위 침묵의 기간. 두 번의 이혼과 스캔들, 탤리에신(Taliesin) 화재 사건
(사무실 겸 거처)등에 휘말려 해외 도피 및 은둔 생활을 하였으며 또한 1920년대 말에
닥친 세계적인 경제공황의 여파까지 겹쳐 작품 활동이 전시대에 비해 거의 없었다.
미드웨이 가든(Midway Garden, 1914),일본의 제국호텔(Imperial Hotel, 1915∼1922),
빌트모아 호텔(BiltmoreHotel, 1927~1928)등이 이 시대에 건립된 걸작들이다.
1936 : “폴링워터(Falling water :낙수장)”라고 명명된 카프만 저택 (그의 유기적 건축이을
명확하게 제시), 1939년 존슨왁스 회사 (공간의 연속성과 구조의 조형성을 강조) 등 두 가지 훌륭한 건축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파급되어 있던 “국제건축 양식”을 소화하면서 기적적로 부활하여, 제2차 황금기를맞이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