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의 디아코니아
- 최초 등록일
- 2009.12.02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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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부처의 제자, 칼빈
2. 사랑과 신앙의 관계
3. 섬김직의 확립
4.여성 섬김직
5.칼빈에게 있어 다이코니아 규정의 단초
나가며...
본문내용
개혁교회의 디아코니아의 권위자인 엘시 맥키는 오늘날 교회의 디아코니아에 대해 많은 혼란이 일어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북미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개인주의적인 교회이해라 지적한다. 칼빈의 종교개혁을 통한 개신교 초기 형성단계에 개신교 신학과 신앙실천이 디아코니아 형성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관한 신학적 단초들을 확인해본다.
1. 부처의 제자, 칼빈
칼빈은 신학적인 면이나 실천적인 면에서 마틴 부처(1491-1551)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사상을 이어나갔다. 부처는 두 단계의 교회이해의 틀 안에서 하나님 존재 자체에 정초한 디아코니아를 관철하고자 했다. 부처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사회로서 존재하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선취하는 고백공동체로서 존재한다.
1538년 이래 부처는 두 개의 직제(영혼 돌봄과 육신적 돌봄)를 본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디아콘직제를 통해 교구내에 디아코니아적 인식을 깨운다.
이 직제는 초대교회의 모형에 따라 구상되었고 성만찬과 상호간의 섬김의 근원지로 역할을 한다. 부처는 행정당국과 교회안의 수발드는 이들(사회적 디아콘직)의 봉사에서 교회의 성직수여 의미를 갖게 했다.
2. 사랑과 신앙의 관계
칼빈(1509-1564)은 개혁교회 안에 각인되어 있다. 그는 부처의 초기 4개의 교회직제 구분을 받아들였다. 칼빈에게 있어 디아콘직은(시민적 공동체 국가의 상황에서) 사회적이고 의식적인 면에 따라 개혁되어져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종교개혁의 후발주자로, 그의 종교개혁적 구상은 종교개혁적 자유를 위한 구체적인 투쟁보다는 오히려 이를 변형시켜 나가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물론 그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선행을 통한 업적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신앙으로만”을 분명히 강조하였다. 하지만 신앙의 강화를 위해 행위실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업적주의적인 행위경건에 대해 생애 내내 반대하였던 루터의 모습이 칼빈에게서는 더 이상 발견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칼빈은 선행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주신 증거”로 간주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