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성곽과 산성 -백제지역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9.12.14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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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시대 성곽과 산성의 종류, 축조 방법 등을 백제지역을 중심으로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시대개관
2. 연구현황
Ⅱ. 본론
1. 성곽의 형식구분
2. 산성의 형식구분
Ⅲ. 결론-백제산성의 특징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 시대개관(時代槪觀)
삼국시대 백제는 경기, 충청, 전라지역에 산재하던 여러 정치체들이 한강 하류 유역의 백제국(百濟國)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출현한 고대국가이다. 온조왕 27년 마한을 병합했다고 하나 백제토기 양식의 성립이나 도성축조, 위세품의 제작 등 고고학적 근거로 보아 3세기 중후반대에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475년 장수왕의 남침으로 도성이 함락됨에 따라 백제는 웅진(충남 공주)으로 천도하게 되고 성왕 16년(538년)에는 사비(충남 부여)로 다시 천도하게 된다. 백제의 천도는 단순한 도성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고고학계에서는 수도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성기, 웅진기, 사비기로 나누어 보고 있다.
2. 연구현황(硏究現況)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는 5부(部) 37군(郡) 200성(城) 76만호(萬戶)였다고 하여 지방 행정단위가 성을 기본으로 하는 체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발굴 조사가 많이 진행된 대전·충청권의 경우 약 260여개의 산성이 확인되었는데 이것들이 모두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이라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백제의 영역권이었던 호남과 경기·강원 일부에 분포되어 있는 산성을 총 망라한다면 그 숫자는 백제본기에 수록되어있는 200성을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이로 볼때 연구사적으로 성(城)과 성곽(城郭)의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백제 산성에 관한 연구는 1970년대 이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연구는 도성(都城)과 지방성(地方城)으로 나누어 구조와 방비체계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로 백제 산성 연구에 토대를 마련했으나, 지표조사를 바탕으로 진행했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발굴 조사는 1980년대에 들어 천안 목천토성(木川土城), 익산 오금산성(五金山城)등이 조사되면서 백제 산성의 특성과 원류(源流)가 밝혀졌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나타난 사실들을 바탕으로 백제부흥운동 기간에 등장하는 여러 성곽들의 위치비정, 산성을 통해 본 도성의 방비체제 등 새로운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참고 자료
심정보, 2009,『백제 산성의 이해』 주류성.
윤철호, 2007,『한국 고고학 강의』 사회평론
서정석, 2002,『백제의 성곽』「웅진ㆍ사비시대를 중심으로」학연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