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유일체제의 확립과 주체사상
- 최초 등록일
- 2009.12.15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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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치세력에는 만주파, 연안파, 국내파, 소련파가 있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할 때 4세력이 연합해서 수립하였다. 김일성은 1948년 9월에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상, 1949년 6월에 창당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직책을 맡음으로써 당과 국가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였다. 이후 중앙집권적으로 조직 규율된 조선노동당은 모든 정치조직을 장악하여 북한 정치체제의 핵심 권력기관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한편 김일성의 권력 강화는 6․25전쟁 때부터였으며 6․25전쟁은 김일성이 정치적 적들을 물리치고 유일체제를 형성하는 첫 번째 길목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김일성은 자신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연안파의 무정과 소련파 허가이를 전쟁 중에 숙청했으며, 1952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박헌영, 이승엽 등 남로당 세력을 `반당 반혁명적 음모책동‘을 한 간첩종파도당이라는 죄목으로 숙청함으로써 국내파를 북한정치에서 완전히 제거하였다. 김일성 지도체제는 중국과 소련의 후원을 받던 정적들이 김일성의 정책을 비난한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더욱 공고화되어 1958년 3월에 개최된 제1차 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완결되었다. 이 시점부터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와 신격화도 더욱 심화되었으며,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사망할 때까지 심각한 정치적 도전을 받지 않은 채 유일지도자의 위치를 지켰다.
북한에서 ‘주체’ 문제가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된 것은 1955년 12월 당 ‘선전선동원대회’에서 김일성이 행한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에서이다. 여기에서 김일성은 자신의 리더십을 확립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첫째, 북한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적용하자는 것과 둘째,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조선혁명의 전통을 교양하자는 것이었다. 주체사상은 처음부터 어떤 이론적 체계를 갖추었던 것이 아니었고 국내외 정치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로서 개발된 것이다. 김일성은 소련의 영향,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운 좋게도 1958년에 중국하고 소련간의 이념분쟁으로 인해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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