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기선교역사에서 사회 사업적 접근
- 최초 등록일
- 2010.01.29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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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A. 의료사업
2. 교육사업
3. 기타사업
4. 결론
본문내용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올 무렵 근세조선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깊이 부패한 상태였으나 쉽게 그 악습을 근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회악은 불결과 질병, 미신 그리고 빈곤과 관리들의 가렴주구였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조선인들은 불결한 환경에서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미신에 의존하여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이었다.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한데도 관리들은 자기들의 안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은 도덕적으로도 많은 악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 한국의 선교사들은 내적 신앙의 체험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자 혹은 심령주의자들의 신앙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 파송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 선교사들의 신앙형태는 경건주의적, 부흥회적 유형을 기초로 하는 신앙이었다. 이러한 신앙적 특성으로 인해 사회문제의 원인은 근원적이고 구조적으로 파악하여 접근하기 보다는 선교의 일환으로 동정적인 구제사업 혹은 박애사업에 치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에 의한 신교육은 국민들에게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민족의식과 민권의식을 갖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 결과 구한말과 일제시대에는 교회가 계몽운동과 애국운동에 적극 관여함으로써 사회운동 차원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일제 식민 통치기간 중에는 농촌 개발사업, 농민 계몽 사업들이 선교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는데 농사전문지, 농사학교, 농사강습회 신용협동조합운동등을 통하여 선교과제를 실천하였다.
한국 개신교회는 19세기 후반부터 외국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통해 사회복지사업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은 초기부터 소외계층에 대한 선교정책을 확고히 수립하여 사회복지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초기선교사들의 사회봉사 활동은 의료사업과 교육 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한국인에 대한 접근방법으로 당시 한국사회의 심각한 욕구가 보건과 교육 사업을 택한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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