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인의 정체와 일본창세신화의 의미
- 최초 등록일
- 2010.05.03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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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래인의 정체와 일본창세신화의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목차
1. 서론
2. 세습왕조의 성립과정
3. 일본 국토창생신화의 의미
4.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본고에서는 왜 왕권과 가야 및 백제 왕권과의 관련성 여부를 타진해보고, 이러한 역사의 실태가 일본신화에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또 한 일본에 세습왕조가 성립되어 가는 과정 등을 야마오유키히사의 논설 등을 비롯한 한일의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살펴보고, 그 과정에 가야 및 백제왕조의 이주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시기의 도래(이주 및 정착)의 방식이 일본창세신화 및 건국신화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세습왕조의 성립과정
1) 여성최고 사제자의 위상
중국문헌 『위지』「왜인전」에, 히미코라고 하는 여성이 귀도(鬼道)로 왜인 종족을 대표하는 왕이 되어 30여 개국을 거느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4, 5세기의 야마토정권은 부족연합체제 조직상의 기관으로서, 신을 모시는 기능을 담당하는 여왕과 외교와 군사의 기능을 담당하는 남왕과의 성속 2중 왕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왕(대왕)으로는 자질, 능력, 신망이 있는 유력호족이 추대되고, 그 인물은 여성제주가 제신을 정당근거로 하는 자격 취득의례에 의해 성별되었다.
5세기의 대왕은, 권력구조적으로는 지역수장으로부터 외교 군사권의 위임을 받은 왕권의 대표자에 지나지 않고, 정치적 주체는 어디까지나 각지의 공동체를 인격적으로 체현해갔던 지역수장에게 있었다. 이처럼 신을 모시는 여왕과, 외교와 군사의 기능을 담당하는 남왕과의 2중권이었던 부족국가의 왜인사회는, 4세기 말 경부터 세속권력기관인 남왕의 권력이 급속히 강화되어 갔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4세기 전반 무렵까지는 여왕을 주체로 제사를 중심으로 한 여러 소국의 결집이었으나, 4세기 후반 경을 경계로 하여 5세기 전반 경까지는 남왕을 주체로 한 군사적 결집이 점차 우월해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백제와의 대외적 관계가 핵심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왜의 한반도 출병과 백제의 위기
왜왕권이 한반도 남쪽으로 획기적인 출병을 하여, 경남 및 전남지역을 직할영토로 했다고 하는 주장은 『니혼쇼키』진구키 49년에서 52년까지 6개의 기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 기사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