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의 문학론
- 최초 등록일
- 2010.05.13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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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설가 김남천의 문학론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서론
2. 김남천의 삶과 시대적 배경
3. 김남천의 문학론
4. 결론
본문내용
2. 김남천의 삶과 시대적 배경
김남천의 본명은 金孝植(김효식)이다. 김남천은 필명인데, 간혹 가운데 南(남)자를 빼고 金天(김천)으로 불린 적도 있다. 그가 본명으로 불렸던 때는 1931년 조선 공산당 재건 운동과 관련된 제1차 카프검거사건 당시 재판정에서의 일이고, 1953년 북한에서 임화(林和)등과 함께 숙청당하던날, 마지막으로 호명된 바 있다. 김남천은 키가 180센티미터 이상이었으며 훤칠한 미남에다 성격이 깨끗하고 매우 고상했으며 말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1930년대 초부터 소설과 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월북 전까지의 10여년 동안 90여 편의 평론과, 두 편의 장편을 포함한 40여 편의 소설, 한편의 희곡 등 방대한 작품을 썼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창작방법론을 제시하며 ‘문학의 역할’이라는 물음에 대해 나름의 비평과 창작활동으로 그 해결점을 모색하려 했다.
1911년 3월 16일,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면 하부리에서 중농이며 공무원인 김영전의 2남2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는 기독교의 영향아래서 자랐으나 성장 후 좌익사상에 경도 되었다. 1926년 16세에 평양고보에 진학하였고, 중학교 3학년 때는 문학에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月域(월역)>이라는 동인지를 펴냈다. (이들 중 한재덕은 후에 김남천을 카프 동경지부와 연결시킨다.) 1929년 평양고보 졸업 후 동경으로 건너가 호세이(法政)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유학생활을 하다가 이념과 사상의 충돌로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된다. 일본 유학 중 만난 여성과 결혼하였으며, 성천 군수였던 장인과 처가에서 반대가 심하였다고 한다. 3남매를 두었으며 두 딸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고, 아들은 어렸을 때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유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참고 자료
이덕화 <김남천 연구> 1991, 청하
김재남 <김남천 문학론> 1991, 태학사
이재인 <김남천 문학> 1996, 문학아카데미
신상성 <김남천 연구> 1990, 경운출판사
서경석 <김남천-정치적 실천과 문학적 실천>, 권영민 편저《월북문인연구》(pp77~90), 1989
김윤식 <북한문학사론> 1996, 도서출판 새미
리동수 <북한의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 연구> 1992, 살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