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평가
- 최초 등록일
- 2010.05.15
- 최종 저작일
-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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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본론
3.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961년 5월 16일 한강 인도교를 건너 서울을 장악한 쿠데타 세력은 새벽 5시 중앙방송국을 통해 쿠데타를 발표했다. 박정희를 정점으로 한국현대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군사쿠데타 주도 세력들이 개발독재시대를 여는 순간이었다. 그 후 7개월간의 군정의 뒤를 이어 1962년 12월 17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개정헌법에 의하여 1963년 10월 대통령선거와 11월 제6대 국회의원선거를 거쳐 12월 17일 대통령 박정희가 취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제3공화국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파병’, ‘3선개헌’, ‘새마을운동’, ‘경제개발계획’, ‘유신체제’ 등 파란만장한 행보를 하던 박정희의 공화국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사망함으로써 유신체제는 붕괴되었다.
우리나라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지금까지 60여년의 짧은 기간 동안 박정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한국 현대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엇갈려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부터 민주화의 저해요인이었다는 주장, 그리고 그의 유신정권이 있었기에 그에 반한 민주화 세력들이 빠르게 부상되어
3. 맺음말
경제가 어렵다는 요즘, 눈에 띄는 경제성장을 한 때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생활하기 힘든 이 때, 희망의 부활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시대에 대한 맹목적 향수로 소생하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장을 하기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강압책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박정희 정권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 때는 정말 절박하게 ‘살기위해’개발을 하는 때였다. 그래서 당시 박정희가 죽었을 때 통곡을 하던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는 최소한 ‘살아갈수는’있다. 그러므로 그 때와 절실함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국제정세라든지 시장논리 또한 상당히 바뀌었다. 그러므로 박정희 정권의 재부활을 원하는 동향은 옳지 못하다.
참고 자료
김일영,『박정희시대와 한국현대사』,선인. 2006.
김호기,「박정희 시대와 근대성의 명암」, 창비. 1998.
조희연,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5·16에서 10·26까지』, 역사비평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