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 업적
- 최초 등록일
- 2010.10.04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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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족하남아 열시미 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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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이팅게일은 소녀시절부터 병든 사람을 잘 돌봐 주었고 동리의 가난한 환자를 방문하기도 하고 동물까지도 간호해 주는 성품을 지녔다.
부모님의 반대에서 고민하는 가운데 계속병원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시에도 병원방문을 꾸준히 하였다.
마침내 그녀가 간호사업을 자기의 팽생사업으로 정한 것은 24세 때였다.
그녀는 여집사단 같은 것을 신교산하에 조직하고 그들에게 간호에 관한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 그래서 가장 조직적으로 움직여진다는 유럽여러곳의 병원을 돌보고 간호제도를 정밀히 시찰하였다. 1852년에 아일랜드의 떠블린시의 병원을 돌보고 1853년에 파리의 자선간호원단에서 견습하기로 협정하였으나 병고로 계획은 정지되고 오직 1개월 동안 그 간호원의 조직과 내용을 공부하였다. 프랑스,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및 독일의 간호제도들에 대하여 이시기에 저술했다.
크리미아 전쟁에서의 업적
러시아와 프랑스는 자선간호원단들이 있었지만 영구구은 이에 대응할 만큼 간호원들이 없었다. 연합군의 전력은 유리하였으나 영국전의 높은 사망률과 부상병을 위한 간호의 소홀함이 계속 보도되자 영국민들의 여론은 비판적이었다. 당시 영국의 육군대신 씨드니하버트경의 부탁으로 1854년 10월 24일 그녀가 40명으로 된 간호단을 인솔하고 전지로 향했는데 그들 중에는 카톨릭간호원들, 영국교간호원들 그리고 성요한관 간호원들이 포함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숙달되지 못한 간호원들이었다.
그 일행이 11월 4일에 스쿠터리에 도착하였는데 1800명이나 수용하는 큰 야전병원에는 위생시설이나 간호를 하기 위한 제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17인치 간격으로 줄지어 놓은 수십 리나 되는 Barrack Hospital에는 피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누운 부상병으로 꽉차 있고 이와 벼룩이 들끓었다. 하수도 시설도 없어서 세탁도 곤란했고 자리옷, 세수도구도 없는 형편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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