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이토히로부미
- 최초 등록일
- 2010.10.22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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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이토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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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본인중의 한사람일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초대 조선통감으로서 우리나라에게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결국은 안중근 의사에게 살해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낮은 신분에서 총리대신까지 오른 그 시대 일본의 아이콘이었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에 영국공사관을 습격했고 국학자인 하나와 다다토미를 암살하는 등 과격파였다고 한다. 또한 영국유학을 다녀왔고 출세를 거듭하여 초대 내각총리, 초대 추밀원의장을 지내는 등 근대일본의 가장 훌륭한 정치가중의 하나로 일본에서 1984년까지 1천엔 지폐의 얼굴로 나왔었다. 서구 문명을 동경하여 서구문화 수용에 적극적이었고 천황체제 근대국가 설립을 추진하여 천황의 지휘아래 군사력 증강, 민중 정신 쇄신을 시도하였다. 서양의 제국주의를 모델로하여 nationalism을 주창하면서 조선 지배권과 청일전쟁, 조선 지배력을 확고히 하기위해 러일전쟁 등을 일으켰다. 조선통감으로 부임할 당시 조선은 일본의 감독 없이 독립을 불가능하다고 보고 친일회 등을 결성하였다. 일각에서는 이토가 온건파라고도 한다. 일본 군국주의 준동을 억제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을 거라는 것이다. 한일합방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청일전쟁 뒤의 삼국협상, 러일전쟁 결정과정 등 심각한 국제정세와 을사늑약에 따른 조선의 의병활동,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에 의한 이준의 순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서서히 조선을 합병하고자 했다는 조선합방 속도조절론을 펼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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