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 한국교회의 선교사와 목사
- 최초 등록일
- 2010.11.04
- 최종 저작일
- 2010.09
- 2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4,000원
소개글
해방전 한국교회의 선교사12인과 목사10인에 대한 조사와 맺는말이 있습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선교사
(1)귀츨라프
(2)토마스
(3)알렌
(4)언더우드
(5)아펜젤러
(6)메켄지
(7) 헤론
(8)켄드릭
(9)하디
(10)헐버트
(11)홀
(12)무어
(13)소다 가이찌
2. 목사
(1)이기풍
(2)길선주
(3)김익두
(4)도인권
(5)주기철
(6)손양원
(7)송인서
(8)방기창
(9)서경조
(10)양전백
Ⅲ.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한국교회의 역사 안에서 해방 이전에 활동하였던 선교사와 목사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해방 이전의 시기를 조사하니 주로 초창기에 입국하여 활동한 선교사들이 주가 되었고 목사들은 최초의 장로교 목사들과 독립운동을 하였던 이들 위주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시작과 부흥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들의 삶을 정리하며 역사 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쉬는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느낄 수 있었다.
Ⅱ. 본 론
1.선교사
(1) 칼 귀츨라프
귀츨라프는 네덜란드 소속의 선교사이다. 중국선교사인 모리손을 만난후 그는 동양선교에 관심을 가졌고 1826년에는 네덜란드 선교회 파송으로 사이암에서 선교하였다. 그는 183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인 로드 암헤르스트 호의 통역, 의사, 선목의 자격으로 충청도 해안에 당도하였다. 그는 “침통하고도 무표정한 한국인을 만나 성서를 주면서‘ 이 가난한 나라, 부끄럽게도 그 자연을 가꾸고 있지 못하는 나라’,그것이 복음과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 부해지기를”간절히 빌었다. 그는 저서<항해기>에서 제주도를 매혹적인 섬으로 소개하고 선교거점으로 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인과의 대면에서 서양문물을 소개하고 책과 옷감, 감자 재배와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칼빈주의적 여유를 가지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복음을 전했는데 선박의 사정으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떠났다. 그는 외국선박문제에 있어서 근대사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조선 관리들을 만나 외국의 선박이 표류해 왔을 때 도움과 보호를 요청했다. 조선관리들은 진지하게 화답하고 단 보상과 치하는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한국인의 인정이 그런 것이었다. 귀츨라프가 떠날 때 “눈물을 흘린” 이 선량한 백성의 모습이 그의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협정”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최초의 외교교섭으로 기록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