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세여왕과 화랑세기
- 최초 등록일
- 2011.01.11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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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신라의 세 여왕
Ⅲ. 선덕여왕을 통해 본 신라의 여왕 즉위 고찰
Ⅳ. 신라 여성의 지위
Ⅴ. 결론
본문내용
※ 신라의 세 여왕
Ⅰ. 들어가는 말
선덕여왕,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3명의 여왕이다. 이들은 모두 신라의 여왕인데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그 후대인 고려나 조선에도 여왕은 없었다.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것일?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여왕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Ⅱ. 신라의 세 여왕
1. 선덕 여왕
선덕여왕의 이름은 덕만(德曼)으로 진평왕과 그 왕비인 김씨 마야부인 사이에서 첫아이로 태어났다. 그녀는 진평왕의 장녀라고 하나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의 부인이자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부인이 그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닐 가능성이 있으므로 혹시 천명부인보다 약간 뒤에 태어났을 수도 있다. 진평왕이 죽자, 그녀는 적어도 50을 넘긴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신하들은 그녀에게 ‘성조황고(聖祖皇姑)`는 곧 `신성한 황제의 혈통을 이은 여인` 이라는 존호가 붙여졌는데 이는 그녀가 성골왕실의 계통을 이은 여자대왕임을 강조한 것이다.
647년 상대등인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다. 매우 격렬하고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여 양측의 군사는 팽팽하게 대립하였는데 반란와중에 선덕여왕은 이미 병을 앓고 있던 몸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내란 중인 1월 8일에 생을 마감했다.
2. 진덕 여왕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 속에서 선덕여왕이 생을 마감하자 진덕여왕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참고 자료
〈화랑세기의 신빙성과 그 저술에 대한 고찰〉(한국사연구) 1997.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본인가〉(한국사연구) 1997.
〈화랑세기 - 신라인의 신라 이야기〉(김대문, 이종욱) 1999.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이종욱) 2000.
〈역사스페셜 - 추적 화랑세기 필사본의 미스터리〉1999.
<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신록> (웅진닷컴, 박영규) 2004
<천년의 왕국 신라> (창작과 비평사, 김기홍) 2000
<역사스페셜 -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