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과 기축옥사
- 최초 등록일
- 2011.01.11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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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포트입니다.
목차
● 정여립 그는 누구인가
● 정여립과 기축옥사
● 기축옥사
● 조선왕조실록 속의 정여립
● 현대의 정여립에 대한 평가
● 발표자의 정여립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역모자인가 계몽가인가, 정여립 그에 대해서
● 정여립 그는 누구인가
정여립 [鄭汝立, 1546~1589] <상상화>
조선 중기 문신 겸 사상가로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설과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 등 왕권 체제하에서 용남될 수 없는 혁신적인 사상을 품은 사상가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인백(仁伯)이며 출생지는 전북 전주이다. 그는 전주에서 첨정을 지낸 정희증의 아들이다. 통솔력이 있고 명석하였으며,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에 통달하였다고 전해진다. 1570년(선조3년)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583(선조16년) 예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수찬이 된다.
처음에 그는 이이와 성혼의 문하에 있으면서 서인(西人)에 속하였다. 하지만 이이가 죽은 뒤 동인(東人)에 가담하여 이이를 비롯한 서인의 영수인 박순 · 성혼 등을 비판하였다. 이로 인하여 왕의 미움을 사게 되어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인망이 높아 낙향한 뒤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후 진안군의 죽도(竹島)에서 서실을 세워 활쏘기 모임인 사회(射會)를 여는 등 사람들을 규합하여 대동계를 조직하고 무력을 길렀다. 이때 죽도와의 인연으로 죽도선생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1587년(선조 20년)에는 전주부윤 남언경의 요청으로 대동계를 이끌고 손죽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이후 황해도 안악의 변숭복, 해주의 지함두, 운봉의 승려 의연 등의 세력을 끌어 모아 대동계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였다.
참고 자료
1. KBS역사스페셜 역모인가 조작인가? (조선 최대 정치 미스터리, 정여립의 난)
2. 『지워진 이름 정여립』, 신정일 저, 가람기획 2000
3. 『조선의 인물 뒤집어 읽기』, 김재영 저, 삼인, 2003
4. 『조선시대 당쟁사 1』, 이성무, 동방미디어,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