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 성경(예수셩교전서)
- 최초 등록일
- 2011.02.14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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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세대학교 리포트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성경의 한글 번역 과정
1) 준비 기간(1874년 여름-1877년 여름)
2) 초기 번역시대(1877년 여름-1879년 4월)
3) 매킨타이어 선교사의 번역 참여(1879년 4월-1882년 3월)
① 1879년 말까지의 첫 단계
② 1880년 1-12월의 두 번째 단계
③ 1881년 초부터 1882년 3월까지의 세 번째 단계
4) “예수 셩교 전서”의 완성(1882년 4월-1886년 가을)
3. 서상륜과 서경조 형제
4. 국내로 들어오게 된 한글 성경
5. 결론
본문내용
4. 국내로 들어오게 된 한글 성경
이렇게 찍어낸 한글성경이 조선 땅에 들어오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글 성경은 조선시대의 사신들이 중국으로 다니던 사행길을 따라 국내 반입을 시도하게 된다. 심양에서 단동으로 향하는 길에 압록강을 50킬로미터쯤 앞두고 800여 미터 고지의 봉황산을 넘어 10킬로미터 정도 내려오면 중국과 조선의 국경마을인 책문이라는 고려문이 나온다. 조선에서 청나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고려문은 로스 목사가 우리나라의 첫 기독교 신자들인 서상륜, 백홍준, 이응찬 등을 만났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고려문이야 말로 심양에서 번역된 한글 성경이 국내로 들어오는 ‘바이블 로드’의 입구로서 기독교 선교의 중요한 관문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는 해외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한글 성경이 중국과 일본에서 번역되어 국내에 반입된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일은 세계 교회에서 유례가 없다. 나라 밖에서 어렵게 번역된 한글 성경이 국내에 들어올 때 어떤 난관에 봉착하는지 살펴보자. 1883년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신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성하는 성경을 등에 지고 심양을 떠나 안동(현재의 단동)에 와서 국경을 넘을 계획을 세우며 여관에 투숙하고 있었다. 몰래 그의 집 보따리를 열어 본 여관주인이 짐에서 성경이 나오자 겁을 집어먹고 성경의 일부는 불에 태우고 일부는 압록강 물에 던져 버린다.
참고 자료
박은배(2007),『하나님의 지문』, 서울:새로운 사람들
배안호(2008),『한국교회와 자립선교』, 경기:한국학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