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말 서원의 학당개편과 근대학제의 성립과정
- 최초 등록일
- 2011.05.30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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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말 서원의 학당개편과 청말의 근대학제의 성립과정에 관한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
목차
서 론
1. 무술변법시기 서원의 학당개편 시도와 중지
2. 신정초기 성급서원의 대학당개편
3.학제제정의 필요와 임인,계모학제
결 론
본문내용
서론
중국의 근대교육은 전통교육의 기반 위에 서양식 신교육을 수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전통교육기구 중에서도 서원은 청대 중추적인 교육기관으로서 과거제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다. 1901년 청조가 입고문을 폐지하고 각성의 서원을 일률 학당으로 개편하도록 명한 것은 청조지배체제를 유지시켜주는 관리양성교육의 중심이 서원제에서 학교제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1902년과 1904년 청조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학제를 제정, 반포하고 1905년 과거제를 즉시 폐지한 것은 그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청말 근대교육의 발전과 관련하여 서원의 학당개편이 갖는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에 관한 연구는 매우 적었다. 이에 본고는 우선 무술변법시기와 신정초기 청조의 “改書院爲學堂(개서원위학당)” 정책을 과거제 개혁과 경사대학당을 위시한 전국적인 학당설립 노력과 관련하여 검토하고 아울러 당시 각성에서 진행된 학당개편에 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무술변법시기 서원의 학당개편 시도와 중지
서원을 고쳐서 학당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일찍이 정관응 등에 의해 제기된 적이 있지만, 청조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 직후 순천부윤호 호율분과 형부좌시랑 이단분이 학당설립의 한 방편으로 건의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당시 반대로 인하여 채택되지는 않았으며, 다만 서원의 장정을 개정하여 서학의 내용을 첨가하거나, 서학을 위주로 한 신식서원을 설립하는 것이 서원개혁의 추세를 이루었다. 그리고 서원개혁의 여부는 각성의 독무,학정이나 혹은 서원의 원장을 포함한 지역 신사들에게 맡기는 형태로 방임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