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에 관한 이야기
- 최초 등록일
- 2011.06.15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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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터에 관한 독창적 시각으로 일대기와같은 진부한 이야기는 지양하고
그의 삶을 조명한 레포트 입니다.
교수님게 독창성과 해석력에서 A플러스를 받은 레포트로 기대하신만큼의 효과를 보여줄 것입니다.
목차
<서론>
루터 소개
<본론>
1. 종교의 르네상스를 열다.
2. 신의 이름으로 영혼을 팔지 말라.
<결론>
당신의 올바른 뜻을 이 땅의 모든 종들에게.
본문내용
<서론>
1483년 독일의 작센안할트 주의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난 마틴 루터는 유복한 가정환경 밑에서 고등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해 문학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1505년 여행 중 만난 폭풍우를 계기로 신앙에서 흔히 말하는 이른바 `부름`을 받아 같은 해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1508년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512년 이 대학의 신학 교수가 되었다.
종교 개혁의 불씨를 당긴 장본인이자 루터교의 창시자이다. 독일의 성직자·성서학자·언어학자. 작센 아이슬레벤 출생교회의 부패를 공박한 그의 95개 조항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촉진시켰다. 그의 사상과 저술에서 비롯된 종교개혁운동은 훗날 개신교를 낳았으며, 사회·경제·정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본론>
종교의 르네상스를 열다.
십자군 전쟁 이후 교권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다. 신의 이름을 빌린 성전의 실패로 말미암아 교회는 신의 대변자로서의 위치는 흔들렸고, 교회의 그늘에서 숨죽이던 유럽의 왕과 영주들은 점차 교회의 족쇄를 끊을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종교는 그 절대적 권위의 빛을 점차 잃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곳곳에서 종교의 타락을 비판하고 자성하자는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루터는 종교의 타락과 자의적 해석을 비판하고 종교본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제기 했다.
첫 째, 만인 제사장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개개인이 제도나 의식의 중개 없이 하나님께 단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였다. 종전의 의례는 모두 교회의 주관으로 실시되었는데 이는 교회가 신과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는 매개란 측면을 부각하려는 일련의 조치였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비용과, 성례품의 전가(의례로 바치는 용품을 다시 신도에게 재 판매하여 이득을 취하는)등의 문제를 야기했고 루터는 이것이 교회의 타락을 나타내는 지표라 여겨 이를 반박한 것이다.
둘 째, 모든 직업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는 성속일원론을 주장함으로써 중세의 성속이원론을 배격하였다. 성속이원론은 교회의 오만에서 비롯된 자기우월적 주장으로 왕권신수설과 같이 교회의 권위는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므로 일반인은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이념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하여 사제나 수사가 평신도 보다 더 고귀하다는 관념이 교회내부 인사들의 신념으로 작용했고, 이는 평신도와 교회의 신앙적 괴리를 넓힐 뿐만 아니라 교회를 우상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따라서 루터는 이러한 논리를 직접적으로 반박하였고 이에 따라 성직우위론의 주장이 의미가 없게 되었다.
셋 째, 루터는 화목하고 따뜻하며 찬양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몸소 이룸으로써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려 하였다. 그는 개혁을 감행함에 따라 교회가 신의 본연의 뜻으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루터의 생각은 이전의 개혁가들과 달리 적극적인 호응을 통해 발전했고 교회의 악습은 하나 둘 철폐되었으며, 유럽은 교회에 의한 절대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자율적 신앙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