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당 김충선에 대하여, 조선을 사랑한 왜군장수.
- 최초 등록일
- 2011.06.16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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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문화사 - 임진왜란 발표시 김충선에 대하여 발표하여 만점 받았습니다.
목차
1. 모하당 김충선
2. 귀화 전 출신에 관한 여러 가지 설
1) 사이가의 조총집단 수령
2)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장수
3) 위의 설 들의 부족한 점
3. 귀화 후의 업적과 삶
1) 임진왜란과 귀화과정
2) 전후 ~ 말년
3) 사후
4. 한국과 일본의 연구동향
1) 일본에서 보는 김충선
2) 국내 연구 동향
5. 김충선이 갖는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1. 모하당 김충선
김충선 [金忠善, 1571 ~ 1642]
본관 김해, 자는 선지, 호는 모하당이며 본명은 사야가(沙也可) 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으로 참전하였으나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하였다. 누차 큰 공을 세워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정2품 정헌대부의 벼슬까지 올랐다. 전후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고 살았다.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모하당문집] 있다. 김충선의 본관은 선조가 정해준 것으로 임금에게서 받은 성이라 사성 김씨에 속하며 김충선은 우록 김씨의 선조가 된다.
2. 귀화 전 출신에 대한 여러 가지 설
사야가 김충선의 과거 종적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 측 입장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적국에 투항한 배신자였기 때문에 일본사서에는 실려 있지 않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사야가라는 이름이 두 차례 언급될 뿐 과거 일본에서의 종적에 관해서는 전혀 실려 있지 않고 김충선 자신의 저서인 모하당 문집에서도 일본에서의 자신이나 행적을 적은 기록이 일절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하당 문집에 따르면 김충선이 조선에 조총과 화약 기술을 전수하였으며 조총부대를 조직하여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이 단서를 근거로 일본에서는 사야가의 출신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 사이가의 조총집단 수령
고사카 지로의 소설 바다의 가야금(2001)은 와카야마 현 사이가의 철포(조총)부대 우두머리인 스즈키 시게히데 (생몰연대 미상, 일본에서는 사이가 마고이치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한)를 주인공으로 하여 조총하나로 일생을 누빈 풍운아를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다. 사이가 철포부대는 당시 일본 전국시대 속에서 어떤 다이묘(영주)에도 속하지 않은 최강의 철포집단이었다. 사이가 사람들은 이시야마 혼간지(일본 전국시대 당시 최대의 종교집단)의 핵심 군사력으로서 오랫동안 오다 노부나가를 괴롭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