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A+】예산군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1.07.08
- 최종 저작일
- 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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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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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임 존 성
2. 수 덕 사
3. 오페르트 도굴사건
4. 예산군 산림 부당대부사건
본문내용
한눈에 보는 예산군의 역사
예산은 본래 예산군, 대흥군, 덕산군이 병합된 곳이다. 예산은 백제때 오산현이라 하였고, 757년 (경덕왕 16) 고산현으로 개칭 임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대흥은 백제 때 임존성 혹은 금주라 하였고, 경덕왕때 임성군으로 고쳤다. 덕산은 백제 때 마시산군이라 하였다가 경덕왕 때 이산군으로 고치고 웅주에 예속시켰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예산현으로 개칭하고, 1018년 현종 9년에 천안부에 속해 있다가 뒤에 감무를 두고 조선 제3대 태종 13년(1413)에 예에 따라 현감이 되어, 현내[군내], 금평, 술곡, 대지동, 두촌, 입암, 거구화, 우가산, 오원리의 9개면을 관할 하였는데, 제26대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천안군의 신종면을 편입하였다.
◇예산읍 예산리에 위치한 예산군의 군청의 모습이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대흥군과 덕산군이 폐지되고 예산군에 병합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예산군의 대지동면·술곡면이 대술면으로, 군내면·금평면이 임성면으로, 우가산면·거구화면·오원리면이 오가면으로, 입암면·두촌면·신종면이 신암면으로 폐합하고, 덕산군의 11개면을 4개면으로, 대흥군의 8개면을 4개면으로 통합해 예산군에 편입했다.
1917년에 임성면을 예산면으로 고치고, 1940년 10월 1일 읍제 실시에 의하여 예산면을 읍으로 승격해서 현재 2읍, 10면, 175동리를 관할하고 있다. 1973년 삽교면은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으로는 아산시와 공주시, 남쪽은 청양군, 서쪽은 홍성군과 서산시, 북쪽은 당진군과 아산시에 닿아있다.
<중 략>
<편집자 주>
나 또한 박헌영과 같은 고장인 예산군 신양면 출신이라 어렸을 때부터 비교적 많은 얘기를 주위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를 주장한 정치인이므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한 남한의 정치제제에 있어 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연좌죄에 가까울 정도의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공무원 시험에 있어서도 응시 자격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기도 했다.
비록 섬세하겐 다루지 못하지만 우석대 김두규 교수가 쓴 "박헌영의 고향 바라보는 羊 석상"을 통해 박헌영에 대해 좀 더 깊게 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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