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주의 2중대
- 최초 등록일
- 2011.09.09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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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입체주의에 대해 쓴 글입니다
목차
입체주의 2중대
로베르 들로네와 입체주의
입체주의와 순수색채주의
다양한 입체주의
입체주의의 깃발
입체주의 이후
본문내용
입체주의 이후
우리는 1910년경의 모든 새로운 미술적 시도를 입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화가들은 그 자신 스스로를 입체주의자라고 믿었고, 혹은 입체주의자라고 오해했으며, 관객이나 평론가들은 특별히 무엇이라 분류하기 힘든 작품들을 보면 입체주의라고 말해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입체주의를 무엇이라 해야 할까? 여러 평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입체주의는 감각적인 야수파 미학과는 반대되는 이성을 도구로 한 미술이었고, 가능한 모든 시도를 추구한 미술운동의 총체였다. 아폴리네르는 1912년 10월 14일 르 땅(Le Temp)에 기고한‘입체주의의 시작’이라는 글에서, 입체주의가 인식된 실체를 제시하면서 삼차원의 외모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젊은 화가들에게 즉시 받아들여졌고, 이미 새로운 경향이 입체주의 내부에 나타났다고 말한다.
“개념주의적 공식과 결별한 피카비아와 뒤샹 등은 규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벗어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들로네는 나름대로 순수한 색채의 미술을 조용하게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는 음악이 회화와 맺게 될 전혀 새로운 미술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아폴리네르가 말하는 새로운 미술은 이제 순수회화이다. 그는 순수음악처럼 순수회화의 가능성에 대해 주장했다. 음악이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회화도 자연대상을 모방하지 않고서도, 곧 주제를 포기하면서도 빛들의 조화에 근거한 예술적 감동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베르 들로네의 순수색채주의를 염두에 둔 주장이었다. 그렇다고 대상을 부수고 재조립하는 입체주의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피카소와 브락크는 1912년 이후에도 후일 종합적 입체주의로 불리게 되는 화풍의 개척해 나갔고, 다른 화가들도 그들이 하던 바를 계속해나갔기 때문이다. 즉 입체주의가 끝나고 순수회화가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든 경향이 입체주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