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 최초 등록일
- 2012.05.02
- 최종 저작일
- 2012.03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서대문 형무소 기능과 상징,역사. 현재의 서대문 형무소에 대해 쓴 글
목차
1. 서론
2. 서대문형무소 기능과 상징
1) 기능면
2) 상징성에 대한 측면
3. 서대문형무소의 역사
4. 현재 서대문형무소
5. 결론
6. 사진
본문내용
1. 서론
‘역사학자가 뽑은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으로 최종 선정된 장소 중 하나인 서대문 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지난 1세기 동안 일제에 항거한 독립 운동가들의 수난처로,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가들의 고난처로 이용되어 온 근현대 격동기 역사의 현장이다. 특히 서대문형무소는 일본이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을 얼마나 탄압했는지 아픈 역사의 과정을 보여주는 가치가 있는 곳 임에도 불구하고,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학계 연구가 거의 없다. (일부 책과 논문은 있지만 거의 시작 단계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일제가 이곳을 왜 만들고 어떤 목적으로 시스템화하고 식민통치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2. 서대문형무소 기능과 상징
일본은 국권 침탈 초기에 저항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즉결심판을 하도록 하였다. 이는 한국인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켜 일본에게 복종하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즉결처분은 오히려 한국인의 반일본 감정을 부추겼다.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난 권력자의 권력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공포`보다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일본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깨닫고 소위 `문화통치`를 실시한다. 이는 `민족분열통치`형태로 형식적으로는(겉으로는) 우리 민족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고 정신적으로 지배하고자 했다. 즉, 한국인이 일본을 의식하는 상징체계를 조작하기 위해 일본은 황국신민서사, 창씨개명과 같은 여러가지 상징물들을 만들어 내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서대문형무소`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