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한민국사 4 요약
- 최초 등록일
- 2012.06.16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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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한민국사 4 요약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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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 1 부] 주권은 아직도 불온한 꿈인가
주미대사도 외면한, 아아, 노근리
1950년 7월 25일에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영동읍 임계리 마을에 미군 한 때가 일본어 통역을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통역은 미군이 후방에 있는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줄 것이라며 마을 사람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겨우 1.5킬로미터쯤 갔을 때, 미군은 행렬을 도로에서 벗어나 하천 바닥으로 내려가게 했다. 미군은 총을 쏘고 고함을 지르면서 “누구도, 이곳을 이탈할 수 없고 날이 샐 때까지 고개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미군의 공중폭격과 지상군의 사격을 피해 배수로와 숲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미군이 사람들을 모아 노근리 쌍굴 다리로 밀어 넣었다. 그 굴속으로 미군은 기관총을 쏘기 시작했다.
노근리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9년 9월 29일, 미국 연합통신이 이 사건을 보도한 다음부터다. AP통신의 특종보도나 그에 앞서 국내 일부 언론의 보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노근리가 정은용이라는 기록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AP통신은 학살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전쟁범죄라는 규정도 피해갔으나 AP통신의 보도는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 나아가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전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전기가 되었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증거와 증언, 그것도 피해자 쪽의 것이 아니라 가해자 쪽의 증거와 증언이 나오자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노근리 사건의 진상 조사를 외면할 수 없었다. 미국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일은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사고였다는 쪽으로 몰고 가려 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야 당연히 예상했던 바이나, 더 큰 문제는 미국보다 더 미국을 걱정하는 한국 안보족들의 태도였다. 노근리 학살은 우발적인 학살이 아니다. 그리고 학살을 은폐하는 것만큼은 우발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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