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 러시아 정치인
- 최초 등록일
- 2012.08.09
- 최종 저작일
- 2012.05
- 1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그의 생애와 러시아 정치, 경제 그리고 국제관계에 대하여 정리한 글 입니다. 러시아정치에 관한 레포트를 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목차
1. 고르바초프의 출생과 배경
2. 1985-1987년 시기
3. 1987-1989년 시기
4. 1990-1991년 시기
5. 맺음말
본문내용
고르바초프도 살아 남지 못하리란 공산 쪽이 더 높았다. 스탈린이 그의 집단 농장화 정책에 저항하는 농민을 진압하고자 일으킨 인위적인 기근에 의하여, 식료품이 완전히 바닥이 나버린 1933년 가을부터 1934년 봄에 의하여, 식료품이 완전히 바닥이 나 버린 1933년 가을부터 1934년 봄에 이르기까지, 고르바초프의 고향 부락은 인구가 3분의 2로 감소해 버렸다. 수수로 만든 엷은 수프로 연명해 가는 게 고작이었는데, 수확한 옥수수를 국가에 몰수당하고 난 다음은, 쥐구멍에서 긁어내 온 옥수수 알 때문에 체포당하기도 하였다. 어떤 마을에서는 1살과 2살짜리 유아가 하나도 남김없이 아사해 버렸다고 한다. 고르바초프를 가르친 적이 있다는 교사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완전히 쇠약해져 버린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매장하는데도 같은 묘에 두세 명씩 묻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아기였던 미샤(고르바초프)는 예부터 생명력이 강한 가계에서 태어났다. 고르바초프의 선조는 전형적인 온순한 러시아 농민과는 거리가 먼 우크라이나의 카자흐였다. 지주로부터 도망쳐서, 처녀지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우크라이나와 돈 지대를 떠나 코카서스로 알려져 있는 스타브로폴 지역남단의 미개지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중략>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국민들이 과거의 과도한 행위와 현재의 부족사태에 대해 당을 비난하고, 자신들의 굴레를 벗어던져 버리기로 작정했음을 알지 못하였다. 소련국민들은 또 사회주의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과 위선적인 말에도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은 아니지만, 그들은 옛 신념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개혁적인 급진파와 보수적 엘리트 사이에서 여전히 균형을 잡으려고 하면서, 고르바초프는 1990년과 1991년 내내 중도 입장을 취하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그러나 마지막 타격으로부터의 비러시아계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다음에는 러시아인 자신들 사이에서 반소 감정이 계속 부상하는 것과 함께 닥쳤다. 여전히 인종적 화합과 공통의 사회주의 이해라는 소련의 이상에 도취된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찌와 민주화가 억제불가능의 억눌린 반 중도 감정과 국가적 자부심이라는 힘들을 분출시켰다는 것을 너무나 늦게 깨달아버렸다. 이로 인해 개혁가로서의 고르바초프의 집권은 종결을 의미하게 된다.
참고 자료
세계를 변화시킨 사나이 – 고르바초프 게일 시히 지음 백상
제 1장 “ 전원의 카자흐 ” P37-67
20세기 러시아 현대사 – 존 톰슨 지음 사회평론
제11장 고르바초프 개혁 시대 P605-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