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창덕궁 답사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2.12.04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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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창덕궁의 연혁 개관
2. 돈화문(敦化門)
3. 금천교(錦川橋)
4 인정전(仁政殿)
5. 선정전(宣政殿)
6. 대조전(大造殿)
7. 부용지(芙蓉池), 부용정(芙蓉亭)
8. 어수문(魚水門), 주합루(宙合樓)
9. 영화당(暎花堂)
10. 연경당(演慶堂)
11. 낙선재(樂善齋)
12. 창덕궁 답사를 마치고...
본문내용
조선 태종 연간에 있었던 창덕궁 창건은 한양 재 천도에 즈음하여 이루어졌다. 태조 3년 10월 한양 천도가 있은 후 정종(定宗)은 그 원년 3월 고려의 옛 서울인 개성으로 환도하였고, 다음 태종이 즉위하여 재차 서울로 천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창덕궁은 태종이 재천도 하면서 창건한 궁이다. 태종 4년에 시작한 창덕궁 공사를 만 1년만에 완공하고 그 이름을 창덕궁이라 하였다. 조선의 정국은 경복궁이므로 이의 동쪽에 자리한 창덕궁은 상대적인 위치로서 동궐(東闕)또는 동관대궐(東關大闕)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경복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궁을 신축한 이유는 풍수지리설의 이장에서 본궁에 대한 피방(避方)의 처소, 즉 흉(凶)을 피하여 길(吉)한 방향으로 잠시 자리를 옮긴다는 관념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정궁인 경복궁에서 있었던 골육상잔(骨肉相殘)의 비극을 꺼려한 이유도 있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까지 약 180년간 별로 큰 재난이나 큰 건물의 신축은 없었고, 다만 인정전 후원 담장 증축과 수문당과 대조전의 중수 등이 있었을 따름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