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논란, 예술의 하한선은 있는가?
- 최초 등록일
- 2012.11.29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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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술의 하한선에 대해 고찰한 글쓰기 리포트입니다.
한 시대에 윤리적 입장에서 논란이 된 예술들을 바라보며
표현의 자유의 입장에서 하한선은 없다는 생각의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예술을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하는 하한선은 없다고 생각한다.
현시대 예술이라는 단어는 소설이나 그림, 영화, 의상 등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 개념에 대해서 의문점을 던져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술이란 인간이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는 행위이다. 이 때 사람들은 그러한 행위를 언어로 표현 할 수도 있고, 음악으로 표현 할 수도 그림으로 표현 할 수도 있다. 칸트는 ‘예술은 아름다운 사물의 표현이 아니라 사물의 아름다운 표현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이 말은 아름다운 사물이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따라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다르고 더불어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예술에 있어서 하한선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국제갤러리에서 S대 K교수가 `Post 1945`란 퍼포먼스를 하면서 창녀를 찾는 사람에게 상금을 내리게 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거기에 있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서로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은 창녀인가?’라는 모욕적인 질문을 하게 하고, 이는 예술이란 이름하에 도가 지나친 인성파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아무리 예술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한선은 있어야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에 있어서 하한선이 생긴다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 될 것이다. K교수는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에 정착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하고, (타인에 대한) 예의와 윤리의 한계에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로 이 퍼포먼스를 했다고 말했다. 관객들 스스로가 창녀를 찾으면 상금을 받지만 또한 그 과정의 일원으로서 자신 스스로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모순적인 방법이 우리가 익숙한 음악이나 그림이 아닐 뿐이지 K교수의 사회 고발의 다양한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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