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이후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
- 최초 등록일
- 2012.12.22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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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0년대 무장독립투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무장독립전쟁의 준비
Ⅱ. 1930년대 전반
Ⅲ. 1930년대 중반
Ⅳ. 1930년대 후반
본문내용
Ⅰ. 무장독립전쟁의 준비
1. 독립전쟁의 배경
국권피탈을 전후하여 만주, 연해주 일대에 한민족의 집단적 거주지를 마련하며 항일투쟁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국외 독립운동기지가 건설되었다. 대표적 독립운동 기지로는 이회영·이상룡 등이 설치한 남만주의 삼원보, 이상설·이승회 등이 설치한 밀산부의 한흥동,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들 수 있다.
독립운동기지 건설의 목적은 주로 간도와 연해주 등지의 한인사회를 거점으로 하면서 자립경제의 토대를 바탕으로 근대적 민족교육사업과 군사훈련을 강화하여 무장독립운동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한 자금마련으로는 100여만 명의 동포 사회를 바탕으로 군자금을 조달하였으며(납세, 의연금 형식), 소련 등지에서 무기를 구입하였다. 이들은 산업을 일으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고 청소년에게 근대적 민족교육과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무장독립전쟁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중 략>
2. 조선의용대
중·일 전쟁(1937) 직후 조선민족혁명당이 중국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조직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처음 2개 구대로 구성되었는데, 제1구대는 박효삼이 지휘하여 후난과 장시 등지에서, 제2구대는 이익봉의 지휘로 안후이와 뤄양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본부는 광시성 구이린수에 두었는데 나중에 충칭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병력이 미미하였으므로 전선에 직접 투입되지 않고 후방에서의 적진 교란, 첩보 및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처음에 200명에 불과하던 병력이 1940년 초에는 300명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동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휘하에 광복군이 조직된 뒤로 점점 이탈자가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1942년 4월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조선의용대를 광복군에 편입하기로 결의하였고, 동년 5월 총대장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관과 제1지대장을 겸하고, 의용대는 제1지대에 편입되었다. 조선의용대는 우리 민족으로 구성된 독자적 부대로 중 ·일간의 국제전에 처음 참전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