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시대 사회경제사
- 최초 등록일
- 2013.01.07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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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청시대 사회경제사
목차
I.세역제도
1.세역제도의 문제
2.제도개혁의 추이
3.세역제도 개선의 결과
II.농업
1.중국 농업사의 흐름.
2.상업화의 진전과 농업 기술의 발달
3.농업 중심의 다원화와 수리
본문내용
I.세역제도
1.세역제도의 문제
전근대 시대에는 지금의 농업세에 해당하는 전부(田賦)와 의무노동의 전신이라 할 요역은 실로 국가를 지탱하는 재정의 양대 지주라 할 만한 것이었다. 명청시대에도 세역제를 운용함에 있어서 관리들과 토호세력의 유착 및 그로 인한 농민의 과중한 부담이 항상 문제가 되어 이에 대한 논의는 당시에도 많았고 갖가지 의견이 나왔으나 그 초점은 대체로 제도의 내용을 고치는 데 모아졌다.
1)세수 원액의 준수
명의 전부는 당대 후기 이래의 양세법(兩稅法)을 이어받아 하세(夏稅)와 추량(秋糧)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세량(稅糧)으로도 불렸는데 그 세액은 토지의 생산성이나 소유권 등 각종 성질에 따라 정해졌다. 납부하는 것은 현물 위주로 쌀과 밀 등의 곡물이 가장 근간이 되는 물건이었으며 본색(本色)이라고 불렸고, 다른 물건이나 화폐로 납부하는 경우 그 대체물을 절색(折色)이라 불렀다. 현물 위주로 된 이유는 원말에 주된 화폐였던 지폐는 이미 남발된 상태여서 그 지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상태였고 또한 전한이 심해진 뒤로는 화폐경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왕조를 세운 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중앙과 지방의 정부나 변방이든 현물을 직접 공급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중 략>
황하를 비롯한 화북평원을 흐르는 하천은 상류의 황토고원지대로부터 많은 토사를 운반해와 하천바닥에 침전시키므로, 하천바닥이 주위보다 높은 천정천이 대부분이다. 화북의 많은 하천에서 진행되는 수리사업은 농업관개, 운송, 어패류 획득 등 물의 이용 측면보다는 수해방지를 위한 하천 준설, 제방 건설, 물의 힘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각종 시설물 설치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화북의 대다수 하천이 평원구간에서 하상이 주변보다 높은 천정천이어서 농업용수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화북 각지에서는 우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청대에는 정부 주도로 많은 우물을 팠다. 화북에서는 각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우물 ? 샘은 가장 보편적인 농업용수 확보의 수단이었다. 화북평원의 지표수가 갈수록 고갈되고 있는 오늘날 중국에서는 지하수를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참고 자료
오금성 외,《명청시대 사회경제사》, 2007, 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