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인의기질
- 최초 등록일
- 2013.01.16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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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충청인의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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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람이란 태어난 지리적 환경과 부모, 친척, 친구를 포함해서 성장기 주변의 인문적 영향에 따라 하나의 인격을 형성해간다. 이와 같은 여건이 국가를 단위로 할 때는 민족성, 또는 국민성으로 나타나며, 지역으로 좁혀 보면 지방의 특성 있는 기질로 f하는 것이다. 지역 색을 말할 때의 대 전제는 민족성이나 국민성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란 점이다. 「대개 그렇다」는 차원이지, 칼로 무 자르듯 명백한 선을 긋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민족성이나 국민성도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인데, 항차 지역 색이겠는가 하지만 나라나 민족마다 국민성이나 민족성이 분명히 존재하듯, 지역 색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충청인의 특성과 기질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충청도는 본래 충주와 청주의 머리말을 따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충청도는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며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청도는 항일독립운동이 「충청도 사람의 투쟁」으로 잘 나타나 있듯 독립 운동가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충청인들은 어리숙하게 보이지만 계산적이며 속은 빠삭하다. 또한 속는 척하면서 실속을 확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충청인들은 속내를 감춰 여론조사가 맞지 않는 대표적인 지역이라고 하며 명분이 있을 때는 사리를 돌보지 않고 대의에 앞장선다. 하지만 충청인들은 동향 결속력은 약하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면 똘똘 뭉쳐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충청도는 본래 충주와 청주의 머리말을 따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三韓(삼한)시대에는 馬韓(마한)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百濟(백제)의 판도에 속했다가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후에는 지금의 충북지역이 신라 세력권에 들었다. 공주-부여가 백제의 수도가 되면서 충청도는 백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삼국통일 이후에는 통일신라 한 가운데에 위치한 충주에 中原(중원) 小京(소경)이 설치돼, 중원이라는 이름의 시발이 됐다.
참고 자료
http://monthly.chosun.com/client/reporter/writerboardread.asp?idx=102&cPage=1&wid=njcho
http://blog.daum.net/damulkan/13137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