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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4.15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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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고르바초프정권의 역사
Ⅲ. 고르바초프정권의 사고
Ⅳ. 고르바초프정권의 국상
Ⅴ. 고르바초프정권의 경제개혁
Ⅵ. 고르바초프정권의 페레스트로이카
Ⅶ. 고르바초프정권의 소련붕괴
1. 개혁과 개방의 진통
2. 시장경제로의 전환
3. 민족문제의 심화
4. 옐친의 대두와 소련의 붕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고르바쵸프의 개혁정책은 소련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이루어졌지만 개혁이 점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체제 자체의 존립성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르바쵸프는 사회주의의 기존의 테두리 내에서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이러한 부분적인 개혁 또는 개선으로서는 소련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었다.
소련의 개혁 와중에 소련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주의 세력과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두 그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보수주의 세력은 고르바쵸프의 개혁에 도전하는 쿠테타를 일으켰으며, 이에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개혁세력들은 서방의 지지 하에서 쿠테타를 저지하였다. 8월 쿠테타는 고르바쵸프의 권력복귀로써 마무리 되었지만 옐친과 같은 급진 개혁자들의 위상이 제고되게 되었다. 이후 소연방을 유지하려는 고르바쵸프와 옐친과의 대립에서 마침내 옐친의 승리로 소련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게 되었으며 15개의 공화국이 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새로이 탄생한 공화국들 중 그루지야와 발틱 3개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을 제외한 11개 국가들은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Independent States)를 조직하여 구소비에트 연방국가들간의 협력을 모색하였으나, 이는 과거 연방형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하였다. 거의 70년간 존재하던 소련의 해체는 공화국들의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였다. 특히 경쟁적 우위에서 결정된 것이 아닌 계획경제에 의해 산업의 배치 및 육성이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연방의 해체로 인해 산업간의 연결고리가 단절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독립국가들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나라도 이들 국가와 새로운 정치 및 경제관계를 설정하여야 했으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의 대구소련 공화국들에 대한 경제협력은 주로 러시아, 우즈벡, 카자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는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4대 강국중의 하나로써 정치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비중 있는 국가라는 인식하에서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두 나라는 상당수의 한인이 거주할 뿐만 아니라 자원의 부국으로써 우리나라와 경제적으로 보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고려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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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충남,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관한 연구, 전남대학교, 1991
최태강, 고르바초프의 국내정책과 외교정책의 연계, 한국슬라브학회,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