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박정희 대통령의 성장과정,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철학,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혁,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정책,10 26사건(10 26사태)
- 최초 등록일
- 2013.04.15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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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박정희 대통령의 성장과정
Ⅲ.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철학
Ⅳ.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혁
Ⅵ.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정책
Ⅶ. 박정희 대통령의 10 26사건(10 26사태)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5.16 군사쿠데타는 민주당 장면정권에 대한 정치적 무능력에 대한 반발로서, 민간영역에서 군부로 넘어가게 된 하나의 분기점으로 등장하였다. 일본 제국주의 통치 36년 간 한국사회는 독립 후 국가건설에 필요한 정치조직과 지도력을 양성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였다. 일제의 통치는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구조를 남겼다. 그것은 그들의 전쟁동원으로 사회구조가 과도하게 발전한 반면 토착민족 자본가 및 정치지도자의 성장이 거의 완벽하게 통제된 현실에서 볼 수 있다. 해방 후, 좌. 우익 투쟁 속에서 통치세력으로 등장한 이승만 정권은 통치의 수단으로 오직 일제 잔재의 관료와 미국정부의 이념적. 물질적 원조, 그리고 이승만 자신의 개인적 카리스마에만 의존할 뿐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원칙아래 수립되었으나, 아직까지 미흡한 경제, 사회적 여건이 이러한 이념적 기초를 확립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었다.
<중 략>
"삽작문을 들어서는 데 울음소리가 들리더군요. 아버지와 함께 방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아기를 씻어 옆에 뉘어 놓고 당신도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아기가 새빨갛고 꼬물꼬물 하던 것이 예쁘게 보였다고 기억이 납니다.".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의 금오산 자락 맨 끝에 자리한 허름한 초가집 삽작문에는 그 날 붉은 고추와 숯을 끼운 새끼줄이 내 걸렸다. 박정희가 배냇 생명을 마감하고 태어난 이후에도 난관은 이어 졌다.
"어머니는 젖꼭지가 말라붙어서 정희는 모유 맛을 모르고 자라났습니다. 밥물에 곶감을 넣어 끓인 멀건 죽 같은 것을 숟가락으로 떠 먹였습니다. 그게 우유 대용이었지요. 변비가 생겨 혼이 난 적도 있었지요.".
박재희의 이 말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들 은희만에게 한 박귀희의 생전 술회이다.
"딸을 낳은 뒤에 산후조리를 하고 친정에 갔더니 정희가 태어났더구나. 어머니는 젖이 나오지 않아 내가 정희에게 젖을 물려주었단다. 시집에서 나와 낙동강을 배로 건너서 30분만 걸으면 친정에 도착할 수가 있어 나는 젖을 먹여주려고 자주 상모리에 갔었지.".
참고 자료
김재홍, 박정희의 후예들, 책보세, 2012
김태광, 박정희 스타일, 글로세움, 2011
오원철,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동서문화사, 2006
조우석, 박정희 한국의 탄생, 살림, 2009
정만섭, 서석구, 박정희의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행복에너지, 2012
홍하상, CEO 박정희, 국일미디어,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