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3.04.1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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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답사주제-사회주의 진영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의 합작으로서의 신간회와 건국준비위원회
2.예정지(포인트 지역은 굵게 밑줄)
3.일정
4.교통편 및 예상소요시간
5.팀원역할분담
6.참고문헌 및 출처
본문내용
1.답사주제-사회주의 진영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의 합작으로서의 신간회와 건국준비위원회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조직과 단체들이 명멸했지만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의 합작으로의 신간회와 건국준비위원회만큼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관심과 주목을 받고 회자되는 것도 드물다. 사회주의 진영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의 합작이라고 하지만 그 단체가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족주의를 흡수했는지, 민족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를 흡수되었는지에 따라 단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아보고 그에 따른 단체의 특성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민족이 분단되어 있다는 점에서 민족의 통일이 지향되는 두 운동정신으로부터 현재 남북·좌우분열에 대한 상황에 대한 생각 해 보고자 한다.
2.예정지(포인트 지역은 굵게 밑줄)
<3호선 안국역> 건국준비위원회 산하 치안대(풍문여고) - SK재동주유소(정우회 회관터) - 이상재 집터- 건국준비위원회 창립본부 - 여운형 집터 - 화요회 회관터 - 신간회 본부터 - 신간회 창립 사무소 - 근우회 회관터(신간회 자매단체) - 신간회 경성지회 회관터 - 종묘공원 - 610만세 선창터
<2호선 강남역> 몽양 여운형선생 추모사업회
○신간회 : 신간회는 일제하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단체이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제휴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민족협동전선이었다. 1926년 12월 홍명희와 조선일보 간부 신석우 안재홍의 회합을 통해 그 전기를 마련하였고 이후 그들은 1927년 1월 19일 조선일보계, 천도교 구파, 흥업구락부계, 관서지방 기독교계, 불교계, 조선공산당계 인사들을 망라하여 구성하고, ‘기회주의의 일체 부인’을 포함한 3대 강령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정우회가 2월 1일 통일된 정치전선의 조직을 제창하여 해체성명서를 발표하고, 조선민흥회 또한 2월 11일 합동을 결의함에 따라 2월 15일 YMCA회관에서 개최된 신간회 창립대회는 명실상부한 민족협동전선의 출범을 의미하게 되었다. 아울러 서울청년회 구파 역시 1927년 후반 이후 신간회에 가입을 하고, 지회 조직 또한 급속도록 확산되면서 신간회는 ‘민족적 정치투쟁’의 중심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 정규식, 2004, 혜안
우리민족해방운동사, 강만길 외, 2000, 역사비평사
http://madlejumin.or.kr/bbs/zboard.php?id=jumin&page=1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vote&desc=desc&no=542
http://mongya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