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시대의교육
- 최초 등록일
- 2013.04.22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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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여기서 말하는 유대교육은 대략 바벨론 포로시기인 주전 586년부터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때까지를 말한다.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에 되돌아온 유대인들은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책임있는 남은 자들로서 생각하였다. 대략 주후 70년의 성전파괴까지를 초기 유대교의 마지막으로 간주한다. 후기 유대교의 랍비적 유대교에 이 초기 유대교가 맥락을 이어가며 살아있는 것으로 본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네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기원전 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들과 귀족계급이었고(단1:1-6), 두 번째는 기원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일반 백성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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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친교, 선한 성품,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세 가지 종속적인 목적이 따른다.
이제 회당에서의 교육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이미 제시된 것처럼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까지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두 종류의 영적인 지도자들 즉 사제들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유대 공동체는 삶의 모범을 위한 지도 및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성전이 파괴되고 상류층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후 예배드릴 성전과 성소, 그리고 제의들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의 긴박함과 더불어 국가적 언약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갖고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집중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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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민족이라면 누구나 종교교육을 배워야 했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도록 가르쳤다.
유대 교육은 가정, 회당, 학교라는 세 가지 교육의 장을 통하여 율법을 가르치고 어릴 때부터 이것을 삶의 원리가 되게 하였다.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히브리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였다. 그 결과로 외국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후에도 세계 각처에서 핍박과 고통을 겪었으나 유대 민족의 정체성은 유지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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