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성묘][팥죽][납일][한식][하지][풍습][세시풍속]동지의 유래, 동지의 의미, 동지의 풍속, 동지와 성묘, 동지와 팥죽, 동지와 납일, 동지와 한식, 동지와 하지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3.04.26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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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동지의 유래
Ⅲ. 동지의 의미
Ⅳ. 동지의 풍속
Ⅴ. 동지와 성묘
Ⅵ. 동지와 팥죽
Ⅶ. 동지와 납일
Ⅷ. 동지와 한식
Ⅸ. 동지와 하지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이 있으니, 이 날이 하지(夏至)이다. 그 반대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 있는데, 이 날이 바로 동지(冬至)이다. 동지는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쯤이 되므로, 추위가 막 시작되는 겨울철이다. 동지는 음력으로는 11월에 들게 되므로 옛날에는 11월을 동짓달이라고도 불렀다. 동짓날을 옛날에는 ‘아세(亞歲)’ 혹은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들은 동짓날이 정월 초하루의 설날에 버금가는 설날이라는 것을 뜻한다. 달력이 없었을 때에는 사람들이 해의 움직임을 보고 날짜를 셈하였다. 해가 떠서 날이 밝아 사람들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면, 이 때부터가 하루의 시작이다. 그리고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이을 못 하게 되고 만물이 다 잠들어 버리면, 이 때가 바로 하루의 끝이다.
이와 같이 옛날의 하루는 해가 뜸으로써 시작되고, 해가 짐으로써 끝난다. 마찬가지로 한 해의 시작도 해의 길고 짧음으로 재었으니, 낮이 짧아져 가다가, 한 해 중 가장 짧아진 날이 한 해의 끝이며, 그 날 바로 다음 날부터 낮이 점점 길어지며, 그 때부터가 새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세계의 여러 나라가 다 마찬가지였으므로, 동짓날에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아들이는 특별한 행사를 벌였다. 행사의 대부분은 미신에서 나온 것으로, 무당들이 태양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가장 많았다. 서양에서도 동짓날을 신의 생일날로 삼았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크리스마스이다.
<중 략>
중국 춘추 시대 문공이라는 왕자가 있었다. 임금이 죽고 왕실이 어지러워지자 문공은 멀리 다른 나라를 떠돌게 되었다. 문공에게는 여러 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그 중 개자추라는 무척 충성 스러운 신하가 있었다. 그는 문공이 먹을 것이 없어 며칠을 굶어 쓰러지자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잘라 구워 먹일 정도로 문공에게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훗날 문공은 진나라의 임금이 되었다. 문공은 그를 도와주었던 개자추를 그만 까맣게 잊고 말았다. 훗날 문공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신하로 하여금 개자추를 불러 오게 하였지만 개자추가 산에서 내려오질 않자, 신하들과 궁리 끝에 산에다 불을 질러 산에서 내려오게 하였으나 개자추는 그의 어머니와 내려오지 않고 끝내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문공은 너무 마음이 아파 개자추의 충성심을 위로하고자 해마다 오늘이면 하루 동안 불을 지피지 말도록 하였다. 그 날 이후로 한식날에는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넋을 위로 하고자 불을 지피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고 한다.
참고 자료
강욱(2009), 동지의 세시풍속, 한국지방재정공제회
강욱(2010), 동지(冬至) 이야기, 한국지방재정공제회
권오분(2009), 동지에는 팥죽을 끓이세요, 한국식품연구원
조후종(1999), 동지와 섣달그믐의 절기음식, 대한영양사협회
최상수(1980), 동지 · 칠석 · 답교민속 의고찰, 내외문제연구소
편집부(1997), 동지와 팥죽,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