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개화기와 근대 세계 조선의 개항기 김정, 2007, 『국사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 서울, 웅진 씽크빅
- 최초 등록일
- 2013.05.19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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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조선, 중국, 일본의 개항-근대로 끌려 들어간 동양3국
2장 김옥균의 삼일천하와 캉 유웨이의 백일천하-서양 문물을 대하는 동양의 태도
3장 동학 농민 운동과 프랑스 혁명-근대의 사회 변혁
본문내용
1장 조선, 중국, 일본의 개항-근대로 끌려 들어간 동양3국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올바른 정책이었을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는 못하고 다만 일시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막아냈을 뿐 아닌가? 쇄국 정책은 공장을 세워 나라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 썩어 가는 조선 봉건 체제의 생명을 잠시 더 연장하는 인공호흡기와 같았다.(P116)
-흥선대원군 초기 조선은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농민 항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밖으로는 서양 세력이 몰려오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이 발발하고 후 중국이 홍콩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았으며 후에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일어나면서 더욱 서양 사람은 만나 봐야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그들에게 침약의 구실만 주게 될 것이 뻔 하 다고 여기어 도둑의 마음보를 가진 서양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쇄국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 붙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쇄국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중 략>
그러나 난데없이 청나라 군대가 한양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것은 임오군란으로 도망간 명성황후의 요청을 받고 조선에 쳐들어온 것이다.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왜 청나라에게 가서 요청을 구할 수밖에 없었을까? 임오군란을 일으킨 구식군대는 급료를 제대로 받고 불만이 가라앉았는데 왜 명성황후는 청나라에게 손을 내민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급료만 제대로 주었다면 임오군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또다시 청에게 의존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당시 조선의 개화파는 두 부류가 있었다. 한쪽에는 조선이 근대화를 신속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급진개화파와 개화에는 찬성하지만 개화의 시기나 방법에 의견을 달리하는 온건개화파가 있었다.(P123-125)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