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칼을 든 쯔빙글리 - 칼 교회 개혁 상징
- 최초 등록일
- 2013.06.14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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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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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인문주의자이며 신학자인 쯔빙글리 -성장배경과 교육
2. 쮜리히 전 목회지역
3. 쮜리히에서의 목회와 종교개혁
4. 쯔빙글리와 재세례파 운동
5. 개혁의 확장과 한계들
본문내용
1. 인문주의자이며 신학자인 쯔빙글리 -성장배경과 교육
1484. 1. 1. 출생
상갈렌(St. Gallen)의 토겐부르크(Toggenburg)라는 도시의 빌트하우스(Wildhaus)에서 한 농부의 3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르가레테 브루그만(Margaretha Bruggmann)은 투르가우에 있는 피싱겐 대수도원장의 누이였고, 아버지 울리히 쯔빙글리(Ulrich Zwingli)는 농촌공동체의 마을 행정관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이었으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쯔빙글리는 정치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익숙했던 자유농민들의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는 루터가 태어난 지 두 달 후 태어났다.
5세(1489년) 가정을 떠나 삼촌에게 보내짐.
아버지가 아들이 학문에 소질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베젠(Wesen-발렌 호숫가의 도시)에 살고 있는 숙부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us) 신부에게 보냈다. -오스발트 미코니우스 쯔빙글리의 삶을 제일 먼저 소개해 준 연대기 저자
< 중 략 >
③ 루터
신비주의 - 종교적 체험을 통한 이신칭의 교리가 주는 평안과 위안을 경험
종교적 동기(=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하고 그 동기에 의한 삶을 살기를 원함
구원에 대해서 인간은 무능력하며 구원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결과로 여김
군주제 신봉, 정치나 전쟁으로부터 초연함 - 필요한 경우 국가와 제휴할 수 있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강조함 - 공재설
(1529년 10월) 마르부르크(Marburg) 회담 - 성만찬 논쟁을 중심으로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에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한 말을 문자적으로 사실로 여겼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고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실재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었다. 1523년에 실제적 임재를 인정치 않았던 동료 안드레아스 칼슈타트와 이 문제로 결별하였다. 칼슈타트는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에 근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