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생애와 작품세계
- 최초 등록일
- 2013.07.17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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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모차르트, 그는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에서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아들로 태어났다. ‘요하네스 크리스토스토모스 볼프강 고트리프 모차르트’가 그의 정식 이름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마데우스라는 두 번째 이름은 ‘신의 은총’이라는 뜻으로 독일식 이름인 고트리프를 라틴어로 바꾼 것이다. 모차르트는 생전에 라틴식인 아마데우스 대신 프랑스식인 아마데를 즐겨 썼다.
1765년 9살의 모차르트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다섯 아이를 유아기에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이 시기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형제들의 떼죽음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일곱 번째 아들인 모차르트가 무사히 유아기를 넘긴 것만으로도 이들 부부에게는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모차르트의 누나 역시 유아기를 무사히 넘겼다. 게다가 이 사내아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다섯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1761년 1월 26일 저녁 9시 30분, 미뉴에트와 트리오를 30분 만에 다 익혔다”라고 놀라움에 겨워 일기를 쓰게 했다. 이렇게 귀한 아들의 존재는 하이든같이 위대한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한을 풀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들 부자 사이에는 애증의 그림자가 깊었다. 모차르트를 이야기할 때,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를 떼어놓으면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 천재아들은 아버지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집안의 재산이기도 했다. 여섯 살 때부터 이어진 연주 여행을 다녀오면 은행 잔고가 두둑이 쌓였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한 후에는 육체적으로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마저도 두려워했다. 그가 결혼하는 것조차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모차르트는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사랑을 찾아다녔다. 거기에 사랑이 없다면 음악으로 사랑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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