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개신교 선교의 시작)
- 최초 등록일
- 2013.08.19
- 최종 저작일
- 2011.02
- 1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1. 최초의 선교 시도
2. 선교 이전의 성경 번역 사업
3. 초대 선교사들의 입국
4. 한국에서의 기독교의 선교와 수용
5. 초대 선교사들의 전도 활동과 교회 설립
6. 선교 정책
본문내용
1. 최초의 선교 시도
대원군이 실각하게 되자 고종은 점차로 밀어닥치는 외세를 견디지 못하고 쇄국 정책을 포기하자 세계 여러 나라라의 개신교 선교부에도 한국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1870년에는 조선 정부가 일본과 외교적 수교를 맺도록 강요당하였다. 한국은 쇄국의 긴 잠에서 깨어나서 해외의 세계를 향하여 눈을 뜨고 열강이 약소국의 식민화에 혈안이 되고 있는 국제 사회의 무자비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조선의 조정은 미처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외부로 문호를 개방하여 세계 열강의 사절들을 맞이하여 서방의 여러 국가들과도 속속히 통상 수교 조약을 맺었다. 1882년에 미합중국과, 1884년에는 영국, 독일, 이태리, 러시아와, 그리고 1886년에는 불란서,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와 수교 및 우호 조약을 맺었다.
<중 략>
이 네비어스의 선교정책은 당시 한국에 있는 선교사들에 의해 운용되었고 한국선교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선교정책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는데 그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1)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면 그를 떠나지 말고 끝까지 그를 붙들어 그가 개인 전도하는 일꾼이 될 때까지 인도한다. 2)교회의 운영과 기구조직은 그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획, 실천한다. 3)교회에서 전도, 재정을 감당할 유자격자가 나오면 그를 교회 지도자로 육성한다. 4)교인들 자신의 재정적 힘으로 교회 건축을 하도록 유도하며 되도록 교회당의 양식은 토착적인 형태로 한다.
네비어스의 선교정책을 답습하여 ‘한국장로교회 선교부 공의회’에서는 1893년 1월에 구체적인 선교정책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1)전도의 목표를 상류층보다 근로 계급의 귀도에 두는 것이 더 낫다. 2)모성은 후대의 양육에 중요한 영향력을 주는 관계상 부녀자의 귀도와 청소년의 교육을 특수목적으로 한다. 3)군 소재지에 초등학교를 설치함으로써 기독교 교육에 성과가 많을 터이니, 선교부 소관 학교에 재학한 남학생들을 교사로 양성하여 각 지방에 파송한다. 4)교육받은 교역자를 배출하는 희망도 우리 교육기관에서 실현될 것이니, 이 점에 항상 관심을 두어야 한다. 5)사람의 힘이 다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회개시키니, 모든 힘을 다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정확한 말로 성경을 번역하여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참고 자료
없음